항목 ID | GC07100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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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國債報償運動 |
영어공식명칭 | The National Debt Compensation Movement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조형열 |
[정의]
1907년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나라 빚을 국민들의 모금으로 갚고자 일어난 국권수호운동.
[개설]
아산 지역의 국채보상운동 지회 건설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는다. 아산 지역의 국채보상운동은 지역민이 자발적으로 국채보상금을 의연(義捐)[사회적 공익이나 자선을 위하여 돈이나 물품을 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여성들에 의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역사적 배경]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는 을사조약 이후 국권회복운동이 애국계몽운동과 의병 활동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애국계몽운동은 학교 설립을 통해 독립 역량을 기르자는 교육계몽운동과 성금을 모아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 내자는 국채보상운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경과]
아산에 살던 노동자 출신 안봉삼(安鳳三)은 임금 중 국채보상금 명목으로 80전(錢)을 모아 아내에게 맡겼는데, 며칠 후 아내에게 돈을 달라고 했더니 2환(圜)을 마련해 놓았다. 아내가 자신의 머리를 깎아 성금으로 보탰던 것이다. 또한 궁내부 주전원경(主殿院卿) 양성환(梁性煥)의 딸은 원남면 백암리[지금의 염치읍 백암리] 이씨 가문에 출가했는데, 두 아들을 기르면서 국채보상운동의 소식을 듣고 20원의 성금을 내놓았다.
[의의와 평가]
아산 지역민의 국채보상운동 참여는 여성이 주체적으로 참여한 운동이었다. 또한 보통 사람도 스스로 나라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행동한 자발적 운동이었으며 소극적인 형태로나마 일제 침탈에 저항하는 국권회복운동으로서 의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