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이태연 정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972
한자 孝子李泰淵旌閭
영어공식명칭 Monument for Filial Son Lee Tae-yeon[Hyoja Lee Tae-yeon Jeongnyeo]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강청리길 26-48[강청리 280-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여송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28년연표보기 - 효자 이태연 정려 건립
현 소재지 효자 이태연 정려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강청리길 26-48[강청리 280-1]지도보기
성격 정려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강청리에 있는 효자 이태연의 조선 후기 정려.

[개설]

이태연(李泰淵)[1799~1867]은 본관은 전주, 자는 성장(聖長), 호는 강옹(江翁)으로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의 후손이다. 아버지 이의호와 어머니 초계정씨 사이의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고 돌아가신 후 삼년상의 시묘를 하여 예를 갖췄다. 이미 살아 있을 때인 1828년(순조 28)에 효자 정려가 내려졌다. 사후에는 효행으로 1876년(고종 13)에 통정대부 사헌부 감찰로 추증되었고, 1891년(고종 28)에는 학행으로 이조참의에 증직되었다. 이태연과 부인 경주이씨의 합장묘가 정려 뒷산 종중 묘역에 있다.

[위치]

효자 이태연 정려아산시 염치읍 강청리에 있다. 염치읍 소재지 근처의 국도 39호선[아산로] 염치교차로에서 왼쪽[서쪽]으로 지방도 624호선[현대로]을 따라가다가 3.2㎞ 되는 지점에서 오른쪽 강청리 마을길로 500m 올라가면 오른쪽 100m 지점에 효자 이태연 정려가 보인다. 영인산 상투봉의 남서쪽 자락이다. 정려 부근에는 약 200년 전에 지어져 이태연이 살았다고 하는 고택 자리에 최근 새 한옥이 세워져 있고 향나무가 고택의 내력을 말해 주고 있다.

[변천]

정려각이 세워진 뒤의 구체적 중수 과정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 종래에는 홑처마 맞배지붕이었으나 최근에 중수하면서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바뀌었다.

[형태]

정려각은 정면과 측면 모두 1칸인 단칸 건물이다. 벽면은 홍살이고 가구 양식은 도리식이며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올렸다. 건물에는 화려한 단청이 이루어져 있고 기단부 위에 돌난간을 둘러 놓았다. 내부에는 중앙에 효자비를 새로 만들어 세워 놓았고 위에 명정 현판이 걸려 있다.

바탕은 붉은색, 글씨는 흰색으로 칠해 놓은 명정 현판에는 ‘효자 증통정대부 이조참의 전주이태연지려 상지이십팔년신묘팔월일명정 병자이효행증통정대부사헌부감찰 신묘이학행가증(孝子贈通政大夫吏曹參議全州李泰淵之閭上之二十八年辛卯八月日命旌-丙子以孝行贈通政大夫司憲府監察辛卯以學行加贈)’이라 쓰여 있다.

이와 함께 전면의 기둥에는 주련이 걸려 있는데, 전면에서 보아 오른쪽은 ‘신통신명용환조두적각(辛通神明用煥鳥頭赤脚)’이라 각서하였고, 왼쪽에는 ‘학천금고천강홍과황마(學闡今古荐降紅窠黃麻)’라 각서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태연은 지극한 효행으로 생전에 정려가 내려지는 이른바 생정려를 받은 효자였다. 효자 이태연 정려이태연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려로서 문중의 자랑은 물론이고 오늘날에도 이태연의 효행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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