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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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孝婦慶州崔氏旌閭 |
영어공식명칭 | Monument for Filial Daughter-in-law Gyeongju-Choessi(Hyobu Gyeongju-Choessi Jeongnyeo)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금성리 산5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여송은 |
건립 시기/일시 | 1893년 - 효부 경주최씨 명정이 내려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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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8년 - 효부 경주최씨 정려 중수 |
현 소재지 |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금성리 산50 |
성격 | 정려 |
양식 | 겹처마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금성리에 있는 효부 경주최씨의 정려.
[개설]
효부 경주최씨(慶州崔氏)는 호조참판을 지낸 충주지씨(忠州池氏) 지한문(池漢文)의 부인이다. 최씨는 어릴 때에도 효녀로 이름이 났고, 결혼 후에도 시부모와 남편을 정성껏 섬겼다. 그러던 중 시아버지가 병환으로 자리에 눕게 되어 최씨는 남편과 함께 온갖 약재를 구해 다려 드리며 치료를 위해 오랫동안 애를 썼다. 그래도 병환이 위중해지자 최씨는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살을 베어 약과 함께 다려 드리니 그 덕분인지 시아버지의 병이 낫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은 최씨를 효부라 칭송하였고 그런 사실이 알려져 1893년(고종 30)에 효부 명정을 받게 되었다.
정려 건립 과정에서 당시 지한문의 증손자뻘 되는 지석범(池錫範)의 역할이 컸다고 전한다. 지석범은 ‘지참봉’이라 불리었으며, 의술도 뛰어나 흉년에 마을사람들을 구휼하기도 하고 의술을 베풀어 명망이 높았다. 지석범의 공을 기리는 자선비가 금성초등학교 옆에 세워져 있다.
[위치]
원래 효부 경주최씨 정려는 금성리 강당말의 열녀(烈女) 해남윤씨(海南尹氏) 정려에서 북동쪽으로 약 200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이 들어오면서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열녀 해남윤씨 정려와 나란히 서 있다. 금성초등학교 앞 사거리에서 남서쪽으로 400여m 지점 오른쪽에 있는 강당말 마을길로 올라가면 마을 뒤 산자락에 정려가 있다.
[형태]
효부 경주최씨 정려는 정면과 측면 모두 1칸 규모이며 사면 벽에 홍살이 설치되었다. 둥근 초석 위에 둥근 기둥을 올렸다. 가구는 초익공 계통으로 처마는 겹처마이고 맞배지붕을 올렸으며 좌우 측면에 중방 아래까지 길게 방풍판을 설치하였다. 목재 부분은 모두 붉은 단청이 시행되었다. 정려 내부에 명정 현판이 걸려 있으며, ‘효부 증가선대부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지한문처 증정부인경주최씨지려 광서십구년육월일일명정(孝婦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池漢文妻 贈貞夫人慶州崔氏之閭 光緖十九年六月一日命旌)’이라고 쓰여 있다.
[의의와 평가]
효부 경주최씨 정려는 자신의 살을 베어 시아버지의 병을 치료했던 경주최씨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이다. 현대 사회와는 달랐던 조선 후기 사회의 모습과 윤리관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