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4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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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義精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홍제연 |
[정의]
보령현감으로 재임 중 임진왜란 때 2차 진주성전투에서 순국한 문신.
[개설]
이의정(李義精)[1555~1593]은 보령현감으로 2차 진주성전투에 참여하여 끝까지 분전하다가 왜군이 성문을 열자 남강에 뛰어들어 순국하였다.
[가계]
본관은 황려(黃驪)이다. 고려 후기의 문인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8대손이다. 할아버지는 예조판서 이장(李墻)이다.
[활동 사항]
이의정은 보령현감에 재임하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진주로 달려가 참전하였다. 이 의병 중에 보령 사람도 포함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1593년(선조 26) 6월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김천일(金千鎰)[1537~1593]·최경희(崔慶會) 등과 더불어 최후까지 싸웠으나, 왜적이 진주성 남문을 깨뜨리고 들어오자 남강에 투신, 순국하였다. 당시 순절한 이들 30인 중 29인이 모두 진주 창렬사(彰烈祠)[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에 배향되었는데, 이의정만 빠진 것을 아쉬워하여 1799년(정조 23) 옥천의 유학 조희규(趙熙逵) 등의 상언(上言)으로 창렬사에 배향하였다.
[묘소]
이의정의 묘소는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봉곡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정려각이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봉곡리에 있으며, 경상남도 진주시 창렬사(彰烈祠)에 위패를 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