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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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葺 |
이칭/별칭 | 송재(松齋),칠우당(七友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홍제연 |
출생 시기/일시 | 1560년 - 황즙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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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0년 - 황즙 황윤길 수행하여 일본 다녀옴. |
활동 시기/일시 | 1597년 - 황즙 군량미 600석 조달 |
활동 시기/일시 | 1600년 - 황즙 전후 복구 위한 정철(正鐵) 4천 근 조달 |
몰년 시기/일시 | 1613년 - 황즙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16년 - 황즙 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에 증직 |
거주|이주지 | 은거지 -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
묘소|단소 | 황즙 묘소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대창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장수 |
대표 관직 | 승정원좌승지 |
[정의]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장수 황씨의 충청남도 보령 지역 입향조.
[개설]
황즙(黃葺)[1560~1613]은 임진왜란 때 군량미 600석, 전후 복구에 철 4천 근을 수집하여 상납한 장수 황씨의 보령 입향조이다.
[가계]
본관은 장수(長水), 호는 송재(松齋) 또는 칠우당(七友堂)이다. 세종조의 명상(名相) 황희(黃喜)[1363~1452]의 현손(玄孫)이다. 아버지는 황윤탕(黃允宕), 어머니는 전주 이씨로 종실 두성령(杜城令) 이암(李巖)[1499~?]의 딸이다. 이른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당숙인 황윤길(黃允吉)의 보호를 받았다. 풍천 임씨 임서신(任瑞臣)의 딸과 혼인하였고, 재취(再娶)는 현감 박자(朴滋)의 딸이다.
[활동 사항]
황즙은 보령 지역 장수 황씨 가문의 입향조 황정직의 아버지이다. 황즙은 어린 나이에 연달아 부모를 여의고 당숙 황윤길(黃允吉)[1536~1592)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하였다. 황윤길은 아들이 없었으므로, 황즙을 아들처럼 돌보았다. 황윤길이 정사(正使)로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올 때에 황즙이 군관으로 수행하였다. 황즙은 처가인 풍천 임씨 가문이 거주하던 충청도 비인에 ‘칠우당(七友堂)’이라는 집을 짓고 은거하며, 꽃과 대나무를 심고 삭망에는 제사를 올리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옷과 곡식을 나누어 주고, 의약을 처방하며 지냈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벌어지고, 황윤길이 사망한 후 황즙은 당숙의 시신을 수습해 경기도 고양시 지축동 선산에 안장한 3년간 즐거움을 누리지 않았다.
정유재란 때에 총관사 한효순(韓孝純)에게 군량미를 보내고 통훈대부(通訓大夫) 예빈시직장(禮賓寺直長)의 벼슬을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전란이 끝난 후에는 철 4천 근을 모아 충청도순찰사 장만(張晩)에게 상납하였는데, 이 공으로 사후인 1616년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에 증직되었다.
황즙의 아들 황정직(黃廷直)[1581~1657]은 어머니 임씨를 모시고 비인을 떠나 아버지의 묘가 있는 남포에 입향하여 정착하였는데, 지금의 황교리 광암마을 남쪽에 제방을 쌓고 논밭을 만들어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였다고 한다.
[묘소]
황즙의 묘소는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대창리에 있다. 황즙의 묘갈명은 이호민(李好閔)이 ‘유명조선국선무랑예빈시의장증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겸경연참찬관황군묘갈명(有明朝鮮國宣務郞禮賓寺宜長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黃君墓碣銘)’이라고 지었다.
[상훈과 추모]
1616년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