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1285
한자 ‒産業‒藝術‒熊川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원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5년 3월 - 웅천면에서 웅천읍으로 승격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8년 - 웅천소도읍 육성사업 선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2년 - 웅천돌문화공원 착공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4년 3월 29일 - 웅천돌문화공원 개장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에 있는 웅천읍의 돌 산업과 예술.

[개설]

웅천읍은 오석의 고장이며 대한민국 석재산업의 산실로서 석재산업의 기반이 되어 왔다. 석재상이 많아 석재단지를 이루고 있으며 단단한 검은색의 돌인 남포오석은 주로 비석을 만들 때 사용한다.

석재단지가 모여 있는 화락산 중턱에 위치한 웅천돌문화공원은 2014년 3월에 개관하였으며 1만여 평[33,000여 ㎡]의 규모로 석재문화전시관과 보령벼루관, 오석작품관 등의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다. 석재전시관에서는 석재문화의 역사와 남포벼루 제작과정 등을 전시해 놓았고, 조선 중기 윤증(尹拯)[1629-1714] 선생의 벼루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벼루로 재현되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실내 체험실이 있어 탁본과 서예 체험을 해볼 수 있다. 2층에 있는 갤러리 탑에서는 매월 다양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야외전시장에는 돌조각과 시화 등이 전시되어 있다.

[웅천의 특산물, 남포오석]

웅천에서 나오는 검은빛의 사암은 석질이 단단하고 흡수율이 낮아 잘 깨지지 않으며 검은 광택이 나는 것이 특징으로, 비석 등을 제작하면 풍화에 강하여 오랜 기간 변하지 않는 특성이 있어서 ‘남포오석(藍浦烏石)’이라는 별칭으로 알려져 왔다. 또한 남포 해안가 및 섬 지역에서 나오는 애석(艾石)은 미정질 화강암으로 역시 풍화작용에 강하며 갈면 희고 푸른 빛이 나는데, 비석 이외의 석제품을 만드는 데 쓰였다.

한편, 청석(靑石)으로도 불리는 흑색 셰일은 벼루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는데, 이 셰일은 층리로 이루어져서 마모율이나 강도에 따라 벼룻돌 또는 벼루의 뚜껑을 만드는 데 사용하였다. 우수한 돌로 만들어진 벼루는 전국적으로 유명하여 예부터 ‘남포벼루’로 널리 알려졌다.

이러한 우수한 석재의 산지였기 때문에 보령 지방은 석재산업이 발전하여 왔다. 따라서 보령 지역은 역사적으로 돌을 가공하는 석공장(石工匠)을 많이 배출하였고 각종 석제품 역시 질이 좋기로 유명하였다.

보령 오석은 보석이라 말할 정도로 진귀한 돌이며, 성주사지에 있는 국보인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는 천 년의 세월 속에서도 글씨가 오롯이 남아 있다. 또한 보령 오석은 역대 대통령[박정희, 김대중, 노무현]의 비석과 독도수호비 등을 제작하였을 정도로 우수성이 널리 입증되었다고 한다.

[석공예산업의 발전과 쇠퇴]

석재가공산업은 주로 원석으로 쓰이는 오석(烏石)과 애석(艾石)[쑥돌 또는 쑥석]의 산지인 웅천과 남포 지역에서 시작되고 발전하여 왔다. 초기에는 망치와 정, 쐐기를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우수한 석질의 돌을 만나거나 노두를 발견하면 적당한 크기로 금을 긋고 정으로 구멍을 뚫은 뒤 쐐기를 박아 망치로 쳐서 떼어내 다시 정과 끌로 다듬고 마모석으로 갈아서 제품을 만들었다. 제품은 주로 생활필수품으로 곡식을 가공하는 돌확[돌로 만든 조그만 절구]에서부터 매, 돌절구, 돌메 등이 만들어졌고, 이것은 자가 사용하거나 또는 인근 지역의 희망자에 공급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석공업은 석불, 석탑, 석등, 비석 등의 제품을 생산하면서 크게 발전해 왔다.

보령 지역의 석공업은 18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원석 산지와 가까운 지역이었던 보령시 남포면 월전리웅천읍 수부리에서 석제품을 만들었는데, 월전리의 경우 경주 이씨(慶州李氏)가 1650년경부터 살기 시작하여 집성촌을 이루어 오면서 이들 중에서 석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일제 말기에는 120호 중에 100여 호가 석공업에 종사하였다.

산업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석공업도 기계화가 되어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게 된다. 1970년대에 들어 묘비석을 중심으로 한 석공예품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수요에 충족하기 위한 기계화가 진행되었다. 이때 보령 지역의 석공업은 과거의 원석 산지인 월전리수부리보다 전기가 공급되는 웅천읍 대천리 지역에서 크게 발달하였다.

원석을 알맞은 크기로 자르는 데는 절단기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원형의 톱날 끝에 공업용 다이아몬드를 붙여 동력으로 톱을 돌려 돌을 절단하는 것으로 용도에 따라 다양한 크기가 있다. 또 돌에 천공(穿孔)[구멍을 뚫음] 할 때 쓰는 에어톨, 돌을 깎거나 다듬는 그라인더, 돌의 표면을 자연스럽게 다듬는 버너램프 등이 있는데, 특히 소형 에어톨은 돌에 글자를 새기고 정교한 조각을 할 때 사용하는 도구로, 돌을 쪼는 핀의 끝 부분에 당가루라는 금속을 처리하여 강도를 높여 돌을 조각하는 데 적합하도록 하여 사용한다.

이처럼 석공업에 기계가 도입되면서 생산 능력 또한 크게 증가하여 늘어나는 국내 수요는 물론 수출 물량까지 충당하는 대규모석 공장이 등장하였다. 특히 우수한 석질과 정교한 기법으로 제작된 보령 지방의 석공예품을 일본인들이 선호하면서 일본식 납골 묘비석이 제작되어 대량으로 수출길에 올라 외화를 벌어들이는 산업으로 성장하였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서 중국의 값싼 석제품들이 반제품 또는 완제품 형태로 들어오고 일본인들도 발길을 중국으로 돌려 보령산 석제품 수출길이 끊기게 되었으며, 원석인 애석은 아예 산출이 안 될 뿐 아니라 오석 원석도 일부 사유지에서 채취하다가 2000년대 들어와 그나마 고갈된 상태다.

발 빠른 업체들은 중국에서 원석을 수입해 가공하여 제품을 생산하였고, 이제는 아예 중국에서 가공한 완제품을 들여와 판매만 하고 있는 업체들도 늘어나고 있다. 보령 석공업이 맥을 이어 발전하려면 우선 양질의 원석을 확보하는 일인데 자연 훼손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규제가 심하여 원석 채취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양한 석공예 제품]

보령 지역에서 생산되는 석가공품은 시대에 따라서 많은 변천을 겪으면서 발전하여 왔는데 8·15해방 이후 주로 생산되던 것은 묘비석이었다. 초기 장비가 없을 때에는 인력으로 운반할 수 있는 크기의 비석이 고작이었으나 교통 및 장비의 발달과 함께 생활형편이 나아지면서 조상 묘역을 치장하기 위한 비석의 수요도 급속히 늘어났다.

비석도 좌대와 갓석[지붕처럼 덮어 씌워 놓은 돌]을 갖추어 정교한 조각으로 가공하고 크기와 모양도 다양하게 만들어졌으며, 부대시설로 망주석, 심지어는 장명등과 동자석, 문관석까지 옛 고관댁 묘역에서나 봄 직한 것들을 묘역의 치장품으로 만들어 쓰고 있다. 매장할 때에도 돌로 관(棺)을 만들어 쓰고, 봉분에 원형 또는 사각형의 둘레석을 설치하는 등 묘역 정화를 위한 다양한 석제품이 생산되었다.

근래에 들어와서는 장묘문화의 변천에 따라 제품들도 납골묘[지상식, 지하식]와 같은 것들이 생산되는 등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또 새로운 사찰들이 늘면서 불교용품인 석불, 석탑, 석등 등이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정교하게 석재로 제작되고 있다. 그 외에도 문패, 꽃병, 화분, 돌항아리 등 우리 실생활에 쓰이는 물건과 각종 장식품을 조각하고 납골묘지 조성을 위하여 규모와 종류가 다양한 장묘석들이 등장하고 있다.

[웅천돌문화공원]

웅천돌문화공원은 2008년 ‘웅천 소도읍 육성사업’ 공모에 선정되어 2012년 착공하였고, 2년여 공사 기간 후 2014년 3월 29일 개장하였다.

공원은 오석과 남포벼루로 유명한 보령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돌의 향기를 느끼게 해 주는 곳이다. 웅천읍에서 웅천돌문화공원으로 이어진 길은 대부분 석재 회사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묘지에 세우는 문인석과 비석, 사찰에 세우는 불상이나 석탑들이 서 있다. 길 끝자락에 공원을 알리는 대형 돌 조형물이 있고, 긴 계단을 올라가면 웅천돌문화공원 석재전시관에 도착한다. 1층 석재문화 전시관과 체험관, 2층 보령 벼루관, 오석 작품관 등과 함께 세미나실, 갤러리 탑 전시관이 있다. 여기에 야외 체험학습실, 스탠드 그늘막, 연못을 조성하였고, 이 장소들을 연결하는 돌조각 산책로가 조성되어 돌 예술품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걸을 수 있게 하였다.

웅천 석재전시관 내부는 돌의 역사를 보는 듯하다. 조선 중기 윤증 선생의 벼루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벼루로 재현되어 있으며, 우리나라 각 지역의 돌의 종류부터 돌을 채취하고 다듬는 과정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석조 문화도 시대별로 만나볼 수 있다. 사진을 보면서 본 적이 있는 유적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방문객들을 위해 탁본과 서예 체험교실도 운영한다. 어린이들이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암석, 보령의 오석 원석과 옛 석공들이 사용하던 다양한 석재 공구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은 이곳만의 특징이다.

2층은 남포벼루와 돌 예술품, 그리고 갤러리 탑이 있다. 2층 복도에는 보령의 자랑 성주사지 석탑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을 들어서면 역사 속의 남포벼루를 볼 수 있는데 남포벼루는 대한민국 최고급 벼루의 대명사이며,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벼루 3개 중 2개가 남포벼루라고 한다. 마지막 전시실은 사계절 전시회가 열리는 갤러리 탑으로 1년 12달 내내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을 초청하여 전시를 진행하여 공원을 찾아오는 관광객들과 작가의 만남으로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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