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6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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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許震童 |
영어공식명칭 | Heo Jindong |
이칭/별칭 | 백기(伯起),동상(東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부곡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송만오 |
출생 시기/일시 | 1525년 - 허진동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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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72년 - 허진동 문과 초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572년 8월 - 허진동 베이징 사행 출발 |
활동 시기/일시 | 1573년 2월 - 허진동 베이징 사행 종료 |
활동 시기/일시 | 1574년 - 허진동 사산감역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610년 - 허진동 사망 |
출생지 | 허진동 출생지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부곡리 |
거주|이주지 | 허진동 은거지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 |
사당|배향지 | 유천서원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영전길 89-38[영전리 212-3] |
성격 | 학자|문신 |
성별 | 남 |
본관 | 태인(泰仁) |
대표 관직|경력 | 수운판관 |
[정의]
조선 전기 부안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
[가계]
허진동(許震童)[1525~1610]의 본관은 태인(泰仁)이며, 자는 백기(伯起), 호는 동상(東湘)이다. 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허강(許剛)이고, 어머니는 박우(朴祐)의 딸 충주 박씨(忠州朴氏)이다. 아들로 허구전(許九田)과 허구연(許九淵)을 두었다.
[활동 사항]
허진동은 1525년(중종 2)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부곡리에서 태어났다. 58세 때인 1572년(선조 5) 별시 문과 초시(初試)에 합격하였으나, 때마침 등극하사(登極賀使)로 명(明)나라에 들어가는 외삼촌 박순(朴淳)[1523~1589]을 수행함에 따라 복시(覆試)는 포기하였다. 허진동은 1572년 8월부터 1573년 2월까지 베이징[北京]에 다녀온 사행 기록을 「조천록(朝天錄)」에 남겼다.
1574년(선조 7) 대신들의 천거로 관직에 진출하여 사산감역(四山監役)에 임명되고, 그 뒤로 예빈시 참봉(禮賓寺參奉)·삼례찰방(參禮察訪)·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만년에는 벼슬에서 물러나 부안의 변산 우반동[현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에 동상헌(東湘軒)이라는 정자를 짓고 은거하였는데, 당시 정여립(鄭汝立)[1546~1589]이 찾아와 변산에 별장을 짓고 싶다고 하면서, 허진동의 선산(先山) 재목을 쓰자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허진동은 정여립의 인품을 몹시 싫어하여 정색하며 거절하였다.
[학문과 저술]
시문집으로 7권 2책의 『동상선생문집(東湘先生文集)』이 전한다. 『동상선생문집』 권7에 「조천록」이 수록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영전길 89-38[영전리 212-3]에 있는 유천서원(柳川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