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1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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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食島里堂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식도리 식도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승연 |
의례 장소 | 당집[원당] -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식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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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민간 신앙|마을 제사 |
의례 시기/일시 | 정월 초사흗날 |
신당/신체 | 당집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식도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식도리 당제 는 정월 초사흗날 마을 서낭신과 바다의 용왕신에게 제사를 올리며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점은 위도 띠뱃놀이[원당제]나 진리 당제와 다름없다. 산(算)쌀로 ‘산맞추기’를 하여 선주들의 뱃기에 배서낭을 내려주는 깃손내림은 위도 대리에서 하는 방식과 같다.
[연원 및 변천]
40여 년 전에는 위도에 살던 무녀가 당굿을 주관하였으나 무녀가 살지 않게 된 이후로는 제관과 풍물패가 주관하여 당굿을 지낸다. 과거에는 엄격한 기준으로 선출된 제관이 까다로운 금기를 지켰으나 요즘에는 이장이 주로 제관을 맡는다. 전체적으로 절차가 간소해졌다.
[신당/신체의 형태]
식도리 신당은 마을 뒷산인 가마귀산 중턱에 있는 당집이다. 콘크리트로 된 당집은 우진각지붕의 단칸 기와집이다. ‘원당’이라고 부르는 당집 안의 정면 벽면에 본당 서낭, 장군 서낭, 원당[각시] 서낭, 애기 서낭 등 네 서낭의 당신도(堂神圖)가 걸려 있다. 본당 서낭은 정자관을 쓴 백발노인이 서안을 놓고 붓으로 책을 쓰는 글문 대감의 모습이고, 장군 서낭은 장군의 모습, 원당 서낭은 선녀의 모습, 애기 서낭은 전복을 입고 복건을 쓴 동자의 모습이다.
[절차]
1. 당산제
정월 초사흗날 아침 일찍 제관은 마을 뒤편에 있는 당산나무에 가서 당제를 지낸다는 것을 고하는 의미로 제물을 차리고 간단한 제의를 행한다. 그러고 나서 제관과 화장, 풍물패 등의 일행이 경로당 앞에서 함께 모여 마을을 거쳐 원당이 있는 가마귀산으로 이동한다. 마을에서 원당까지 거리가 약 1㎞ 정도 떨어져 있는데, 가는 길이 힘들어도 일행은 중간에 절대 쉬지 않는다. 당 아래 큰신께샘에 이르러서야 풍물패가 우물굿을 쳐주고 휴식을 취한다.
2. 당굿
당에 도착하면 풍물패가 풍물을 울리며 당집을 세 바퀴 돌아 당신들에게 일행의 도착을 고한다. 제관을 맡은 이장과 화장 두 사람은 당집 안, 앞마당, 뒷마당에 각각 제물을 진설한다. 당집 앞마당의 제물은 잡신을 먹여 보내기 위한 것이고, 당집 뒷마당의 제물은 산신에게 바치는 것이다. 제물 진설이 끝나면 당집 앞마당에 모닥불을 피워 주변을 정화한다. 풍물패가 당집 앞뒤와 주변을 돌며 굿을 쳐준 다음, 제관들은 당집에서 절을 하고 술을 올린 후 소지를 하며 마을의 풍어와 안녕을 기원한다.
이어서 제관이 산쌀로 ‘산맞추기’를 하여 선주들의 뱃기에 배서낭을 내려준다. 제관이 산쌀을 집어서 “장군 서낭에 맞춰 봅시다.” 하고 서낭의 이름을 대면서 산쌀의 수를 확인해 보아 짝수이면 그 서낭을 받는 것이고, 홀수이면 다른 서낭의 이름을 대고 산쌀이 짝수로 나올 때까지 산을 맞춘다. 산맞추기를 돕는 사람은 한지에 어선의 이름을 적고, 내림받은 서낭의 산쌀을 넣어 돌돌 말아서 ‘깃손’을 만든다. 깃손은 깃손함에 담아서 마을로 가져가서 선주들에게 준다. 산맞추기를 하는 동안에도 당집 안에서는 계속 소원을 비는 소지를 올린다. 산맞추기를 하고 남은 쌀은 당집 모퉁이에 있는 성주독에 넣어 둔다.
3. 산물
산맞추기가 끝나면 제물로 올렸던 돼지머리는 당집 앞터에 묻고, 나머지 제물은 모두 큰 상자에 담아 용왕밥을 준비한다. 징잡이가 화장 두 사람을 인도하여 바닷가 용왕바위로 내려가서 용왕밥을 바다에 던지는 ‘산물’을 하고 온다. 용왕밥이 가라앉아 잘 보이지 않으면 용왕에게 잘 전달된 것으로 여긴다.
4. 당맞이[당마중]
화장이 산물을 하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당집을 정돈한다. 산물을 마친 사람들이 당으로 돌아오면 풍물패가 굿을 치며 당집을 한 바퀴 돌아 당제를 마쳤음을 서낭신들에게 고하고 일행은 모두 마을로 돌아온다. 일행이 마을에 거의 도달할 때쯤 마을에서는 부녀자들이 풍물을 들고 ‘당맞이[당마중]’를 나온다. 부녀자들과 합류한 일행이 마을로 함께 돌아와 굿을 치고, 선주들은 나와서 ‘깃손’을 받아간다.
5. 도제
마을로 돌아온 화장 2인은 마을 북서쪽 바닷가의 도제터에 가서 정갈하게 제물을 진설하고 도제를 지낸다. 도제를 지내는 화장 2인은 제를 주관하는 동안 마스크를 쓰고 일절 말을 하지 않는다. 도제에 올리는 메는 제장에서 바로 지어서 올린다. 도제가 끝나면 메를 백지에 싸서 세 덩어리를 만들어 세 방향을 향해 던지며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빈다.
6. 도청굿
도제를 지내는 사이 마을 사람들은 동네 한가운데에 굿청을 만들고 제물을 차려 도청굿을 준비한다. 도청굿은 마을을 위해 헌신했던 역대 이장들의 넋을 기리는 굿이라 한다. 제물을 진설할 때 메는 이장의 수대로 하는데 보통 20~25그릇 정도 올린다. 이때 손이 없는 집에서는 쌀 한 되와 술, 돈을 놓은 상인 ‘꽃반’을 가지고 나와 가정의 안녕과 복을 빈다. 위도에 무녀가 살고 있었을 때는 무녀가 밤새 도청굿을 했으나, 지금은 마을 사람들이 소지를 올리며 함께 어울려 풍물을 치는 방식으로 한다.
7. 산물
오후에 도청굿이 끝나면 제물을 큰 함지에 담아서 수레에 싣고 마을 앞 장불을 돌며 제물을 바다에 뿌리는 ‘산물’을 한다. 수중고혼과 마을 주변의 잡신을 먹여서 마을의 액을 막고 어장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산물을 할 때도 풍물패가 뒤따르며 계속 굿을 쳐준다.
[축문]
식도리 당제 의 축문은 따로 없어서 독축은 하지 않는다. 당제와 도청굿에서 소지를 올리는 것이 중요한 절차이다.
[부대 행사]
마을 앞 장불에서 산물을 하고 일행이 마을로 돌아오면 경로당 앞에서 풍물패가 한바탕 굿을 친 다음, 쉬었다가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마을 사람들이 어울려 판굿을 치고 논다.
[현황]
위도에 딸린 섬인 식도는 고슴도치 형국인 위도의 머리 앞에 놓인 고슴도치의 밥이라는 뜻에서 ‘식도(食島)’라는 명칭을 얻었다고 한다. 논농사를 거의 짓지 않고, 어업을 주요 생업으로 삼는 식도 사람들은 당제 지내는 날은 하루 동안 갯일을 쉬고 행동을 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