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박씨
-
경기도 부천시 춘의동에 있는 원미산 골짜기.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일본군과의 접전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 망골이라 불린다고 하나, 망골(亡谷)은 죽은 골짜기가 아니라 ‘바라다’ 또는 ‘빌다’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망골(望谷)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원미산 장대봉 북쪽 기슭 동쪽에 위치한 골짜기로 첫 번째 골짜기인 큰망골과 두 번째 골짜기인 작은망골로 나뉘어 불린다. 망골 골짜기...
-
경기도 부천 지역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생활 풍속. 부천은 넓은 벌판을 중심으로 산자락을 따라 구성된 농경문화가 주류를 이루어 마을 단위의 당굿이나 우물과 밀접한 마을축제가 두레 풍물을 바탕으로 정형화되어 있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중동 신시가지가 들어선 부천들 일대에서 행해졌던 농기고두마리(상좌다툼)와 중동 장말의 장말도당굿, 상동의 사래이도당굿, 원종동에서 행해지고...
-
조선 중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웅언(雄彦), 호는 성남(誠男)·한정(寒停).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를 지낸 박문좌(朴文佐)의 장남이며 어머니는 배천조씨(白川趙氏)이다. 죽산박씨 시조 충정공 박기오(朴奇悟)의 12세손인 박철정(朴鐵貞)이 연산군 시대 부천에 거주하면서부터 후손들이 역곡동·송내동·범박동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다. 박대남은 성품이 단정하고...
-
조선 중기 부천 지역 출신의 효자.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학성(學成), 호는 청암(淸菴). 황해도 수안군수와 기호병마진관절제도위를 지낸 박대남(朴大男)의 장남이다. 죽산박씨는 시조인 충정공 박기오(朴奇悟)의 12세손 박철정(朴鐵貞)이 연산군 대에 부천 지역에 거주하게 되면서부터 경기도 부천시 역곡1동과 역곡2동, 송내동과 범박동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다. 박명장은 1636년(...
-
조선 중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할아버지는 죽산박씨 시조 충정공 박기오(朴奇悟)의 12세손인 박철정(朴鐵貞)이다. 박문필은 인제현감을 지내고, 정3품 통정대부의 품계를 받았다....
-
조선 말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죽산박씨 시조 충정공 박기오(朴奇悟)의 12세손인 박철정(朴鐵貞)이 연산군 때 부천에 거주하게 되어 후손들이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과 송내동·범박동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다. 본관은 죽산(竹山). 아버지는 박윤기이다. 아들은 박주순(朴周淳)[1841~1928]으로 문묘직원(文廟直員)을 지냈다. 1902년(광무 6) 61세의 나이로 정3품인 통정대부...
-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인물 박철정의 묘. 박철정(朴鐵貞)의 본관은 죽산(竹山)으로 연산군 때 추국(推鞫)을 당하여 부평으로 낙향한 이후 죽산박씨(竹山朴氏) 입향조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인은 숙인(淑人) 완산이씨(完山李氏)와 숙인(淑人) 고령신씨(高靈申氏)이다. 역곡중학교 뒤편의 죽산박씨 묘역에 있다. 묘는 2기로 1기는 박철정의 묘이고, 다른 1기는 부인 숙...
-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에 있는 골짜기. 한자로는 율곡(栗谷)이라고 하는 밤골의 어원은 반골이다. ‘반’은 ‘벌어진’과 뜻이 같은 ‘발아진’의 모습을 나타낸 말이다. 반골이 방골이 되고, 다시 밤골이 된 것이다. 밤나무를 많이 심어 밤골이라는 지명으로 굳어버린 것이다. 밤골은 원미산 장대봉 자락과 장자봉 산자락이 맞물리는 곳으로 여월마을 바로 곁에 있어 여월 사람들이 산으로 나무를 하...
-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는 자연 마을. 『조선지지자료』에는 옥산면에 속하는 벌응절리(伐應節里)로 표기되어 있다. 한자대로 풀이를 하면 ‘치고 응하는 마을’, 즉 싸움에 대응해서 치고 응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벌응절리 뒷산을 둔대라고 하는 데, 이 둔대를 군대가 주둔한 곳이라고 해석을 해서 군대가 치고 응하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벌응절리에서 ‘벌(伐)’은 개간되지...
-
죽산박씨의 집성촌 부천은 그리 규모가 큰 도시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많은 집성촌을 이루고 있던 지역이다. 비록 지금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면서 그 수가 많이 줄기는 했지만 민씨, 변씨, 신씨, 박씨 등이 오랫동안 부천에 세거하였다. 집성촌은 동일한 혈연관계를 가지고 있는 성씨들이 모여서 이룬 마을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정착, 형성 후 오랜...
-
부천이라는 지명은 1914년 일제에 의해 지어졌기 때문에 부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유일하게 부천임씨가 있을 뿐이다. 다만 현재 부천과 가까운 곳인 부평엔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우는 데 일등공신이 된 이희목의 부평이씨가 있고, 희귀성인 부평 사씨(舍氏)가 있다. 조선시대까지 부천이 부평으로 불렸기 때문에 부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에 부평이씨와 부평 사씨(舍氏)를 포함시킬 수 있을...
-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는 자연 마을. 사래울은 ‘새를’이라고도 부르고, ‘사하리(沙下里)’·‘사리월(士里月)’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지지자료』에는 표기가 되어 있지 않다. 『부천시사』나 『부천사연구』 등에서는 죽산박씨 박철정이라는 선비가 와서 정착을 했다고 해서 사래리(士來里)라고 부른다고 했다. 또 사래울에서 ‘사래’라는 말을 산과 산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
경기도 부천시 송내동에 있던 자연 마을. 산골이란 이름은 한자로 쓰면 산곡(山谷)이고 고대어로 쓰면 미골이다. 이곳을 미골이라 하지 않고 산골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이곳 마을이 조선시대에 들어서 형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송내동 398번지[경인로60번길 18] 일대에 있던 마을로 지금은 한국전력공사와 부천여자중학교가 있는 주변 지역에 해당된다. 이곳은 약 300여 년 전부터 평산신씨...
-
경기도 부천시에 입향한 성씨. 입향성씨(入鄕姓氏)는 특정 인물이나 특정 가문이 일정한 지역에 정착하여 세거하면서 발생하게 된다. 이 때문에 입향성씨에는 입향조가 있게 마련인데, 입향조는 실존한 인물로서 추적이 가능한 경우도 많지만, 역사가 오래되어 막연히 성씨만 구전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숭배되기도 한다. 촌락사회, 특히 집성촌에서는 입향조를 정점으로 혈연공동...
-
박기오를 시조로 하고 박철정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죽산박씨의 시조 박기오(朴奇悟)는 신라 경명왕의 넷째 아들 박언립(朴彦立)의 아들이다.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움으로써 죽주백에 봉해지고 식읍으로 죽산을 하사받았다. 이후 후손들이 죽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박기오의 손자 박충숙(朴忠淑)은 고려 현종 때 중군병마사로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고 참지정사와 문하시랑평장사를...
-
경기도 부천시에 세거하는 동성동본의 집성촌. 집성촌(集姓村)은 동성동본의 성씨집단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을 의미한다. 집성촌의 형성 시기는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지만, 조선 초기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여 17세기 이후 집중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7세기 이후 집성촌 형성이 일반화되는 객관적 배경으로는 상속제도의 변화, 주자가례(朱子家禮)의...
-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 사래리에서 행하는 산신제. 춘덕산신제는 야간에 지냄에 따라 의례가 짜임새가 있고, 전통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사래리는 죽산박씨 집성촌이다. 춘덕산신제는 원래 역곡동의 옛 지명인 사래리 감배산, 곧 역골(驛谷)에서 사래울로 넘어가는 감배산 사래울고개에 있던 큰 소나무에서 지냈다. 그러나 삼신아파트 개발 때 신목(神木)이 사라져서, 그 후로는 삼신아파트 뒤편...
-
경기도 부천시에 세거해 온 토박이 성씨. 부천 지역에 마을이 형성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집성촌의 경우는 고강동에 밀양변씨가 입향(入鄕)한 조선 초기로 추정할 수 있다. 부천 지역에 있는 움집터나 고인돌의 존재로 미루어 보아 상고시대에도 자연부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시 자연부락의 거주민들이 현재의 부천 토박이들의 조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삼국시대와 고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