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3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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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鶴井里 |
이칭/별칭 | 당너머,단넘어,뱀골,사동,신정리,청상강이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윤종일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성환읍사무소 동쪽 2㎞, 국도 1호선과 경부 고속 국도 사이, 성산[사산성]의 동북쪽 용안치(龍鞍峙) 능선에 있다. 1950년 이후 지금까지 군사 지역으로 방공포가 설치되어 접근하기가 어렵다. 2011년 백제 초도 위례성 관련 지표 조사 시 이곳에서 기왓장이 다수 발견되어 건물이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학선동(鶴仙洞)의 ‘학(鶴)’ 자와 신정리(新井里)의 ‘정(井)’ 자를 합쳐 학정리(鶴井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학정리는 통칭 당너머로 불렸는데, 직산현의 여단(癘壇)이 설치되어 ‘단이 있는 고개 너머’라는 의미이다. 직산현 관아 용안치 능선의 단고개(壇峴) 북쪽으로 성산 동북쪽에 위치한다. 예전에 관가의 주도하에 각 군현(郡縣)마다 좋은 장소에 제단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제사를 올렸는데 이를 여단이라 한다. 여역신(癘疫神)에 대하여 지방의 수령들이 매년 봄가을마다 제향을 올렸던 곳이다.
[형성 및 변천]
직산현(稷山縣) 이북면(二北面) 학선동, 신정리[청상강이, 청상가비], 사동(巳洞)[뱀골], 추학동(秋鶴洞)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충청남도 천안군 성환면 학정리가 되었다. 1963년 1월 1일 천안읍과 환성면이 통합하여 천안시로 승격됨에 따라 천원군(天原郡) 성환면(成歡面) 학정리(鶴井里)가 되었고, 1973년 성환면의 성환읍 승격에 따라 천원군 성환읍(成歡邑) 학정리가 되었다. 1970년대 말 제3 탄약창의 시설 확충 등으로 학정리는 군부대 밖으로 이전되었고, 이주민들은 남서울 대학교 정문 앞 성월리 새터와 기타 지역으로 대부분 이주하였다. 1991년 1월 1일 천원군이 천안군으로 명칭을 변경함에 따라 천안군(天安郡) 성환읍 학정리가 되었고, 1995년 5월 10일 천안시와 천안군의 통합에 의하여 천안시(天安市) 성환읍 학정리가 되었다. 2008년 6월 23일 행정구를 설치함에 따라 천안시 서북구(西北區) 성환읍 학정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학정리는 성산의 동북쪽 아래가 되며, 월봉산의 동쪽 지역이다. 용안치(龍鞍峙) 능선 완만한 구릉 지대와 골짜기를 형성하며 C자형의 오목한 삼태기 같은 지형은 성산의 관문, 입구이며, 수구(水口)이다. 성환천, 학정천(鶴井川)[홍경천, 대홍 저수지]이 발원하며, 북쪽으로 소사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현황]
2011년 12월 31일 현재 면적은 6.34㎢이며, 총 5가구에 10명[남자 8명, 여자 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당너머[鶴仙洞]는 뱀골 남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직산현 여단 너머 쪽이 된다. 뱀골은 사동(巳洞)이라고하며 사곡리 청상가비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지형이 뱀처럼 생겼다고 한다. 동척골은 신정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며, 신정리[청상가비]는 학정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송학동(松鶴洞)은 군부대로 마을이 옮겨져 송골과 학정리의 이름을 따서 송학동이라 하였다. 후에 성월리 3구로 개칭되었다.
동쪽으로 입장면 흑암리·판정리, 서쪽으로 성환읍 성월리, 남쪽으로 직산읍 군동리, 북쪽으로 성환읍 대홍리·수향리와 접해 있다.
학정리는 평택, 안성 소사벌에서 성환 안궁리[아교(阿橋)]~수향리, 수천리[무내], 대홍리[홍경사, 광연 통화원]~성환역도 찰방~학정리~직산 군동리, 판정리~성거 삼곡리, 정촌리~모시울[저리], 문성~천흥리 만일령(晩日嶺)과 천안 무너미[안서동], 접티[接峙]로 넘는 고대 육상 교통로의 지름길이었다.
성산의 용안치 능선이 오목한 C자형의 삼태기 모양의 지형에 학정리가 위치하며, 일제 강점기 군사 시설을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이 활용을 하였고, 6·25 전쟁을 거치며 현재까지 제3 탄약창의 군사 시설이 계속 설치되었다. 이로 인한 제3 탄약창 주변 지역민의 사유 재산권 침해가 커서 성환읍, 직산읍, 입장면 주민들의 군사 시설 보호 구역 해제와 다른 곳으로의 이전을 바라는 민원이 계속 증가하여 원성이 높은데 이와 상관없이 학정리 지역은 요새화되었다. 1894년 청일 전쟁 때 청나라와 일본군 간에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