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6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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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時白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매당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상엽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581년 - 이시백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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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660년 - 이시백 사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718년 - 이시백 묘비 건립 |
현 소재지 | 이시백 묘 -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매당리 |
성격 | 묘 |
관련 인물 | 이시백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매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시백의 묘.
[개설]
이시백(李時白)[1581~1660]은 연평 부원군 이귀(李貴)[1557~1633]의 장남으로 부자가 함께 인조반정에서 공을 세워 공신에 올랐다.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등 인조 초기의 국가적 변란 속에서 큰 공을 세우며 활약하였지만, 1650년(효종 1) 김자점(金自點)의 역모 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아 도성 밖에서 평생을 보내었다. 이귀의 묘를 공주에 조성한 뒤 이시백의 후손들이 공주와 천안 일대에 대대로 살게 되었고, 이시백이 사망하자 천안 매당리에 장사를 지냈다.
[위치]
이시백 묘(李時白 墓)는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매당리에 있다. 매당 2리 자무실 마을 회관 북쪽, 안자매로 들어가는 길목의 낮은 산줄기가 솟아 있는 곳에 이시백 부부의 묘가 있다. 정경부인 남원 윤씨와 정경부인 창원 황씨의 묘가 양쪽에 나란히 자리 잡고 있어 3개의 봉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변천]
연안 이씨 가문의 묘역은 경기도 고양에 조성되었는데, 이귀의 묘를 공주로 이장하면서 그 후손들이 공주와 천안 광덕, 풍세 일대에 세거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귀가 사망하고 3년이 지난 1636년에 작성된 화회문기(和會文記)[재산 상속 문서]를 보면 봉제사(奉祭祀)의 몫으로 떼어 둔 재산을 이시백이 상속받았다. 이러한 인연으로 이시백의 후손이 충청도에 거주하게 되었고, 묘를 천안에 조성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묘비는 1718년(숙종 44)에 건립되었다.
[형태]
묘역은 3개의 봉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운데 이시백의 묘만 석재로 봉분 주위를 두르고 전면에 묘비와 상석, 혼유석(魂遊石)을 두었다. 좌우로 문인석과 망주석이 세워져 있다.
묘비의 대좌[105×75×30㎝]는 방형으로 측면에 안상(眼象)이 윗면에는 복련(覆蓮)이 조각되어 있고, 비신[125×60×25㎝]을 올렸다. 이수(螭首)는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이다.
[금석문]
묘비의 전면에는 ‘증정경부인 남원 윤씨 부좌 정사공신 영의정 연양 부원군 증시충익 이공 시백지묘 정경부인 창원 황씨 부우(贈貞敬夫人南原尹氏祔左 靖社功臣領議政延陽府院君贈諡忠翼李公時白之墓 貞敬夫人昌原黃氏祔右)’라 새겨져 있고, 측면과 뒷면에 이시백의 일대기와 가계가 기록되어 있다. 비문은 외증손 김주신이 지었다.
[현황]
2013년 현재 연양 부원군의 후손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시백 묘를 통해 조선 후기 공신가의 분묘 조성과 석물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