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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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天安奉先弘慶寺碣記碑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대홍리 319-8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박재용 |
건립 시기/일시 | 1026년 -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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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62년 12월 20일 -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국보 제7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국보 재지정 |
현 소재지 |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 충청남도 천안시 성환읍 대홍리 319-8 |
성격 | 비석|갈비 |
재질 | 화강암[귀부 및 이수]|대리석[비신]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289㎝[전체 높이]|188㎝[비신 높이]|21㎝[비신 너비]|96㎝[비신 길이] |
소유자 | 국유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보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성환읍 대홍리 홍경사지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비.
[개설]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天安奉先弘慶寺碣記碑)는 홍경사의 사적을 기록한 석비이다. 절 이름 앞의 ‘봉선(奉先)’은 고려 안종(安宗)이 그 완성을 보지 못하고 목숨을 다하자, 아들 현종(顯宗)이 절을 완성하였는데, 아버지의 뜻을 받든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다. 갈비(碣碑)는 일반적인 석비보다 규모가 작은 것을 말하는데, 대개는 머릿돌이나 지붕돌을 따로 얹지 않고 비신(碑身)의 끝부분을 둥글게 처리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는 거북 받침돌과 머릿돌을 모두 갖추고 있어 석비의 형식과 다르지 않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보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는 귀부(龜趺)[거북 모양의 받침돌]와 비신, 그리고 이수(螭首)[비석의 머리 등에 용의 모양을 아로새긴 형상]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체 높이가 289㎝에 이르는 대형이다.
지대석은 길이가 250㎝, 너비가 175㎝이며, 기단석은 길이 200㎝, 너비가 165㎝, 높이 15㎝이다. 비신 받침돌은 길이 130㎝, 너비 53㎝이고, 비신은 길이 96㎝, 너비 21㎝, 높이 188㎝이다. 이수는 55㎝의 높이로 올렸는데 화강암으로 제작하였고, 비신은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귀부는 화강석으로 지대석과 동일석으로 만들었는데 등에 귀갑의 무늬가 있고 어룡이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있다. 비신 받침은 귀갑의 중앙부에 돌려 장방형으로 이루어졌고 여기에 앙련(仰蓮)의 연화를 돌리고 있다. 이수는 용을 조출(彫出)한 것인데 용출하는 용의 기상이 전면에 어우러져 있다.
비신의 상단에 ‘봉선 홍경사 갈기(奉先 弘慶寺 碣記)’라는 글씨가 가로로 쓰여 있고, 테두리에는 당초문(唐草文)으로 띠을 돌리고 좌우 측면에는 보상화(寶相華) 무늬로 장식하여 매우 화려하다. 비문은 자경 2.4㎝ 크기의 해서(楷書)로 새긴 것인데, 최충(崔沖)이 짓고 백현례(白玄禮)가 쓴 것이다.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는 홍경사를 지은 지 5년 후인 1026년에 건립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금석문]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는 홍경사의 전반에 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비문의 내용에 의하면 “왕명을 받들어 최충이 비문의 내용을 짓고 당시[1026]의 명필이었던 백현례가 글씨를 썼다. 고려의 제8대 임금 현종이 부왕 안종의 평소 소원이었던 불법을 널리 전파하고자 했던 뜻을 이어받아 당시에 수초가 우거지고 도적이 자못 많이 출몰하여 행인을 괴롭히던 이곳[옛 직산현 성환역 주변]에다 병부 상서 강민첨 장군과 김맹을 별감사로 삼아 현종 8년(1016년)부터 현종 13년(1021년)의 만 5년에 걸쳐 법당, 행랑 등의 200여 칸의 건물과 서쪽에 80칸의 광연 통화원 건물을 지어 길가는 나그네와 공무 수행의 사람들에게는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하고 말과 소 등에게는 마초를 제공하여 편의를 도모하였다.”라고 건립 배경이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