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9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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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琦衡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양대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을경 |
출생 시기/일시 | 1868년 1월 25일 - 강기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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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20일 - 입장 장터 만세 운동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0일 - 강기형 입장 장터 만세 운동 참여 |
추모 시기/일시 | 2006년 -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강기형 출생지 - 충남 천안시 입장면 양대리 |
활동지 | 강기형 활동지 - 양대리 시장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3·1운동 |
[정의]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강기형(姜琦衡)[1868~?] 1868년 1월 25일 충청남도 천안군 입장면 양대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입장 시장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는데, 당시 강기형은 사립 광명 고등학교 교사로 기독교인이었다. 광명학교는 미국인 윌리암이 경영하던 미션 사립 여숙이었다. 강기형은 평소 한일 병합에 불만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활동 사항]
강기형은 1919년 3월 10일경 광명 학교 내에서 직산금광 광부였던 안시봉과 함께 광명 학교 교사와 학생들을 인솔하여 만세 운동을 진행할 것을 협의하였다. 3월 17일경 또 한 차례 모여 계획을 다시 한 번 논의하고 협의하였다.
3월 20일 오전 10시경 강기형과 안시봉은 학생 수십 명과 더불어 직산 금광의 광부 및 인근 주민 약 70여 명을 인솔하고 양대리 시장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안시봉이 자기 집에서 제작한 태극기를 나누어 주었다. 이들은 시장을 누비며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다. 시위 행렬은 양대리 시장에서 3㎞ 떨어진 하장리(下場里)의 입장 시장을 향해 행진하였다. 양대리 시장에서는 70여 명이었으나, 입장 시장에서는 600~700명으로 행렬이 늘어났다.
강기형은 당시 심문 조서를 통해 3월 20일 양대리 시장에 물건을 사러 갔다가 주민들과 학생들이 만세를 부르는 것을 보고 함께 만세를 불렀다고 진술하였다. 이 사건으로 강기형은 4월 28일에 공주 지방 법원의 초심을 거쳐 경성 복심 법원에서 징역 1년을 언도받았으며 고등 법원의 기각으로 1년 4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06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