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0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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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柱旻 |
이칭/별칭 | 천경(天擎)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종식 |
묘소|단소 | 최주민 묘소 - 충청북도 진천군 신월리 산 2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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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려 | 전주 최씨 12정려각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용정리 산 108-3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전주(全州) |
[정의]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천경(天擎)이다. 효자 최극해(崔克諧)의 둘째 아들이며, 최기(崔基)의 아들인 당숙 최극충(崔克忠)의 양자로 입적되어 대를 이었다.
[활동 사항]
최주민(崔柱旻)[?~?]은 천성적으로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어머니가 종창을 앓게 되자 입으로 종기의 고름을 빨아내며 간병하였다. 또, 어머니가 한겨울에 물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시내를 여러 번 오르내리면서 얼음을 두드리며 소리쳐 울자, 얼음이 깨지면서 큰 물고기가 튀어 올라 이것을 잡아다 고아드렸더니 어머니의 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 후 어머니가 죽자 삼 년 동안 시묘를 살았으며, 시묘살이를 하는 내내 처음 상을 당했을 때와 같이 애통해 했다고 한다.
최주민의 효행은 사림(士林)이 모두 본받으려 하였다. 관찰사(觀察使)가 조정에 여러 번 상소하였으나 포상이 내리지 않았고, 좌의정 이경억(李慶億)이 시골에 내려왔다가 최주민의 명성을 듣고 조정에 천거하였으나 역시 포상이 내리지 않았다.
최주민이 죽은 뒤 지역의 유생 수백 명이 모여 조정에 포상을 건의하여 정려가 내려졌고, 후에 최주민의 행적이 『삼강록(三綱錄)』에 실렸다.
[묘소]
충청북도 진천군 신월리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용정리에 있는 전주 최씨 12정려각에 현판이 봉안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