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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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壽弼 |
이칭/별칭 | 찬숙(贊叔)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신덕리 2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종식 |
출생 시기/일시 | 1693년 - 김수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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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754년 - 김수필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825년 - 김수필 효자 정려 하사 |
정려 | 김수필 정려각 - 충청남도 천안시 성남면 신덕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중화(中和) |
[정의]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중화(中和), 자는 찬숙(贊叔)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김진성(金振聲), 증조할아버지는 호조 좌랑을 지낸 김익(金釴), 할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을 지낸 김중정(金重鼎)이다. 아버지는 김한명(金漢鳴)이고, 어머니는 진주 강씨(晋州姜氏)이다. 아들은 김홍제(金弘濟), 손자는 김치삼(金致三)이다.
[활동 사항]
김수필(金壽弼)[1693~1754]은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머니가 병이 들자 의원이 말하기를 제비가 약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시기가 마침 겨울이라 어찌할 바를 몰라 울며 하늘에 빌었다. 그러자 난데없이 제비가 집 안으로 날아 들어와 이를 잡아 약에 넣어서 어머니의 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 또, 한겨울에 어머니가 생선을 원해서 냇가에 가니 물고기가 스스로 뭍으로 올라와 이를 잡아 달여 드려 효험을 보았다고 한다.
어머니가 죽은 뒤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 한 번도 예의범절에 벗어난 적이 없었으며, 폭우와 강설에도 아랑곳없이 하루에 세 번씩 성묘하기를 거른 적이 없었다.
하루는 성묘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갑작스러운 소낙비를 만나 바위 밑으로 피하였는데, 밖에서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얼른 나와 살피는데 바위가 구르며 부서져 내렸다. 또한 매일 성묘를 다니며 물이 없어 고생하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묘소 아래에서 샘이 솟았다고 한다.
어머니의 기일이 다가오면 석 달 전부터 바깥출입을 삼가하며 생선과 고기와 술을 먹지 않았고, 삼 일 전에는 목욕재계하고 통곡하며 제물을 손수 차려 상례의 법도를 지켰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지역의 유생 300여 명이 연명하여 포상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고, 1825년(순조 25)에 정려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