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22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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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壽-麗桂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무학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동욱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8년 6월 28일 - 상명 대학교 구비 문학 연구회에서 이성근에게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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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6년 10월 5일 - 『구비 문학 대관』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8년 6월 30일 - 『천안의 민담과 설화』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2월 - 『한국 지명 유래집』에 수록 |
관련 지명 | 쌍령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무학리 |
채록지 | 보산원리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보산원리 |
성격 | 전설|인물담|지명 유래담 |
주요 등장 인물 | 안수 남매|여계|유의신 |
모티프 유형 | 의적 활동을 하다 참수된 도적|남편이 죽자 늪에 몸을 던진 아내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무학리에 전해 내려오는 의적 안수에 대한 이야기.
[개설]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무학리의 쌍령(雙嶺) 고개는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인풍리와의 경계에 위치한다. 쌍령 고개는 높은 능선에 고개가 두 길로 되어 있으므로 쌍령이라 부르는데, 조선 시대에 공주 이남 여러 고을의 조세와 진상품이 모두 경유하여 서울과 아산 공세포로 운송되던 교통의 요충지였다. 쌍령 고개 아래에 있는 안수성은 성안 마을이라고도 부르는데, 사방이 절벽 같고 그 안에 작은 들이 열려 있다. 「안수와 여계」는 조선 선조(宣祖)[1552~1608] 때 의적(義賊) 안수(安壽)가 안수성에 산채를 짓고 봉물을 털어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다가 추포되어 참수되고 안수의 아내 여계도 늪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안수와 여계」는 상명 대학교 구비 문학 연구회에서 1988년 6월 28일 이성근[75세, 남,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보산원리]에게 채록하여 1996년 천안 문화원에서 발간한 『구비 문학 대관』에 수록하였다. 또한 민병달·이원표 등이 조사하여 1998년 천안 문화원에서 발간한 『천안의 민담과 설화』와 국토 해양부 국토 지리 정보원에서 2010년에 발간한 『한국 지명 유래집』-충청 편에도 유사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내용]
조선조 선조 때 안수 남매는 상민의 자녀로 기개가 남다르고 힘이 억셌다. 양반들의 횡포에 맞서다가 달아난 안수의 가족은 지금의 무학리 쌍령 일대에 무리를 모아 주둔하였다. 그리고 쌍령 고개를 지나는 진상품과 조세를 빼앗아 빈민을 구제하여 의적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무리가 늘어나고 소란이 커지자 광덕 출신 무관 유의신(柳義臣)에게 추포되어 참형을 받았다. 쌍령 인근의 보산원리 사기소 뒷산의 ‘도적놈 수레길’은 안수가 도적질한 물품을 수레에 싣고 성안으로 오르내린 흔적이라고 한다. 대덕리 여계소(麗桂沼)는 안수의 아내 여계가 남편이 잡히자 빠져 죽은 늪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안수가 오줌을 누었던 바위가 크게 패였다는 대평리의 ‘장수 오줌 눈 자국’을 비롯하여 그의 발자국이 바위에 찍혔다는 ‘장수 발자국 바위’, 안수의 부하들이 숨어서 신호를 보냈다는 울바위 등이 남아 있다.
[모티프 분석]
「안수와 여계」는 선조 때 의적 안수 남매가 유의신이 이끄는 관군에게 추포되어 참수되었다는 인물담이자, 안수의 행적과 관련된 흔적들과 안수의 아내 여계가 몸을 던졌다는 여계소 등 지명의 유래를 전하는 지명담이기도 하다. 서민 출신이 의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에서는 서민 의식을, 아무리 의적이라도 도적은 도적이라는 데에서는 당대의 윤리 의식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