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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651
한자 李潤雨
영어음역 Yi Yunu
이칭/별칭 무백(茂伯),석담(石潭)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헌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상지]
성별
생년 1569년연표보기
몰년 1634년연표보기
본관 광주
대표관직 공조참의

[정의]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무백(茂伯), 호는 석담(石潭). 이당(李唐)의 차자 이집(李集)을 일대(一代)로 하고 좌통례공 이극견의 차자 승사랑 이지(李摯)를 칠곡 입향조로 하는 광주이씨의 후손이다. 이덕부(李德符)의 증손이고 국은(菊隱) 이희복(李熙復)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청도김씨, 부인은 인천채씨이다.

[활동사항]

1569년(선조 2)에 태어나 1591년(선조 24)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06년(선조 39)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추천(推薦)으로 한원(翰苑)에 들어갔으며,인조 반정으로 폐고(廢錮)에서 기용되어 응교(應敎)와 사인(舍人)을 역임하고 담양부사가 되었다. 광해군 때 사필(史筆)로서 직서(直書)하다가 척출당하여 경성판관(鏡城判官)이 되었다. 벼슬은 공조참의에 이르렀고 정사(靖社) 원종훈(原從勳)에 책록(策錄)되었다. 문목공 정구(鄭逑)를 스승으로 섬겨 면전에서 지결(旨訣)을 받들어 학문이 바르고 요점을 얻으니 스승이 깊이 경중(敬重)함을 더하여 문하 제생(諸生)으로 하여금 공경하여 본받게 하였다.

정구가 『오선생 예설(禮設)』과 『예의문답(禮疑問答)』 등의 책을 편찬함에 이윤우가 돌아온 후에 책을 만들 수 있었다. 1634년(인조 12)에 세상을 떠났는데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시문을 엮어 만든 일기(日記)와 유고(遺稿) 등을 남겼다.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 상지에 살았다.

[저술 및 작품]

『석담집』과 일기(日記) 및 유고(遺稿)가 있다.

[묘소]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송정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이조참판에 증직하였으며, 문정공 허목(許穆)이 비갈을 지었고 문간공 김세렴(金世濂)이 묘지(墓誌)를 지었다. 성주의 회연서원과 칠곡의 사양서원 및 오산서원에 종향(從享)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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