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8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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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獨立運動家 |
영어의미역 | Independence Fighter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운동을 전개한 사람.
[개설]
독립운동가들은 일제의 한국 침략에 맞서 국권을 수호하거나 일제 강점기에 국내외에서 일제에 저항한 사람들이다. 독립운동의 범위는 한일 병합을 기점으로 앞선 시기에는 크게 계몽 운동과 의병 운동으로 설정할 수 있고, 이후 시기에는 국내외 무장 투쟁, 3·1운동, 노동·농민·학생 운동 등 대중 운동, 문화 운동, 독립운동 자금 모금 운동과 임시 정부 활동 등이 설정될 수 있다.
[시기별 운동]
칠곡 지역 독립운동가의 저항 운동은 조선 말기 일제의 침략에 맞서면서 시작되었다. 경상북도 지역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계몽 운동과 의병 운동이 벌어지고 있을 때 칠곡에서는 척사 위정 계열의 강원형(姜遠馨)의 상소·투서 항쟁과 유병헌(劉秉憲)의 격서 항쟁이 일어났다.
한일 합병 이후 칠곡군에서는 1910년대 대표적 비밀 결사단체인 대한광복회[단] 운동과 조선국권회복단[달성친목회 사건] 사건 등에 관련된 운동이 전개되었다. 1919년에는 3·1만세 독립운동이 전국으로 파급되는 가운데 칠곡군에서는 3월 12일부터 4월 10일까지 인동면 진평동[현 구미시] 만세시위, 약목 장터 시위 모의, 약목면[현 기산면] 평복동 만세시위, 석적면 중동 만세시위, 석적면 성곡동 만세시위 등이 발생하였다. 유림계에서는 3·1운동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면서,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는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칠곡군의 유림 장석영(張錫英)이 깊이 관여하였다. 이 운동은 파리장서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은 사회주의 사상이 유입되면서 이념적으로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로 진행되었다. 국외 독립운동 단체와 연계된 대한독립 후원 의용단, 군정서의 의용병·자금 모집 등 비밀 결사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주로 군자금 모집, 독립운동가 모집 등의 활동이 펼쳐졌다. 또 무장투쟁과 폭탄 테러 등의 방법으로 독립을 달성하자고 하는 움직임에 참여하여 임정 군자금 모집 운동,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 의열단 활동, 김창숙과 군자금·동척 사건 등이 일어났다.
청년운동·노농운동 등 대중운동 단체가 결성되어 일제의 침탈로 인한 대중들의 사회경제적 위기를 원호하거나 대중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민족주의계와 사회주의계가 협동전선을 구축하여 민족운동의 대표 기구를 설립하자는 민족협동전선운동이 일어나 신간회가 창립되자 칠곡군에서도 그 흐름에 따라 신간회 칠곡지회가 설립되었다.
1930년대 이후 칠곡에서는 왜관청년동지회 사건, 보손 진흥회 등을 통해 민족차별 반대, 대중들의 경제 옹호 활동 등이 전개되었다. 1930년대 중반 이후 칠곡에서는 왜관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계열이 주도하는 농민운동이 일어났는데, 적색농민조합운동이 그것이다. 이는 1930년대 중후반 대표적 농민조합운동의 하나였다. 1939년 7월에 근로보국대의 이름으로 왜관 지역의 경부선 철도 복선화 공사에 동원된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이 일본인보다 많은 작업량이 배당된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이른바 왜관사건을 일으킨다. 그 뒤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은 문예부·연구회·다혁당 등 비밀결사를 만들어 민족의식 고취 및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칠곡 출신 독립운동가들은 국외에서도 일제로부터 민족을 독립시키고자 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만주 및 연해주에서 결성된 신흥무관학교, 중국 관내 지역의 상해 임시정부, 의열단 등등 독립운동 단체, 한국 광복단 등에 참여하였다.
[특징]
칠곡 지역 독립운동의 특징은 경북 지역의 유교적 전통이 시대적으로 배경이 되고 있었다. 개항 이후 외세의 침탈에 대항하여 유교적 가치와 전통을 유지하고자 하는 척사위정 계열의 운동이 나타났다.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이후에도 유교적 전통과 일정한 관련이 있는 비밀 결사운동이 펼쳐졌고, 파리장서운동에도 깊숙이 관여하였다. 또한 일제강점기 대표적 독립운동인 3·1만세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이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로 분화되고, 대중운동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칠곡 지역의 운동가들은 전국적인 흐름에 동참하면서, 지역의 사회문제를 민족문제와 연관시키면서 독립운동으로 발전시켜 갔다. 곧 청년운동과 농민운동의 전개가 바로 그것이었다. 또한 1940년대 대구 지역 학생운동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칠곡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들은 국내를 비롯하여 국외로 망명하여 해외에서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따라서 칠곡 지역의 독립운동가들은 식민지 민족운동이 전국적으로 승화되고, 국내외에서 끊임없는 독립운동이 전개될 수 있는 밑거름을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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