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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835
한자 倭館戰鬪
영어의미역 Battle of Waegwa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6·25 전쟁
발생(시작)연도/일시 1950년 8월 9~10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50년 8월 13~17일연표보기

[정의]

1950년 8월 왜관-현풍 방면의 금무봉(錦舞峰)자고산(鷓鴣山)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

[개설]

왜관전투는 1950년 8월 9일부터 10일까지 왜관읍 낙산리 일원에서 벌어진 금무봉전투와 1950년 8월 13일부터 17일까지 왜관읍 아곡·석전리, 약목면, 북삼읍 일대에서 벌어진 자고산전투로 나뉘어진다.

[발단]

금무봉 전투는 1950년 8월 9일부터 10일까지 왜관읍 낙산리 일원에서 미 제1기병사단과 북한군 제3사단 사이에 벌어진 전투이다. 금무봉은 해방 268m이고, 왜관읍 낙산 3리에 위치에 있어서 왜관 가로와 철도를 감제(瞰制)할 수 있는 요지이다. 8월 2일부터 북한군 제3사단은 성주[대구 서쪽 26㎞] 부근에 집결하여 도하 준비를 하면서 왜관 남쪽의 노촌(老村)[노티, 기산면 노석리]과 신기(新基)[새터, 성주 선남 성원리]에서 공격을 감행하였다.

자고산 전투는 1950년 8월 13일부터 17일까지 왜관읍 아곡·석전리, 약목면, 북삼면 일대에서 미 제1기병사단과 북한군 제3사단 사이에 벌어진 전투이다. 왜관 북쪽의 303고지[왜관읍 아곡리 자고산, 전사에는 작조산[鵲鳥山]으로 표기]는 왜관 시가지와 철도 및 도로상의 교량을 감제하여 북한군의 주 공격로를 통제할 수 있는 요지이다. 303고지는 미 제1기병사단의 북쪽 거점이었다. 8월 13일 밤 북한군 제3사단의 1개 연대 병력이 왜관 북방 8㎞ 지점의 수암산(水岩山)[숲데미산 519m, 석적읍 망정리] 서쪽에서 수중교로 도하하여 국군 제1사단의 좌측방을 교란하였다. 8월 14일 오후 무렵 국군 제1사단의 좌측을 교란하던 북한군 병력은 미 제5기병연대 2대대가 방어하고 있던 303고지로 접근하였다.

[경과]

금무봉 전투에서 8월 9일 새벽 3시에 북한군 제3사단 제7연대는 노촌 도선장 부근에서 도하를 시작하여 미 제5기병 연대의 저지를 피해 104고지를 우회하여 금무봉에 올랐다. 북한군 제7연대에 이어 곧바로 제3사단의 제8·제9연대가 동시에 도하를 시도하였으나 미 제5기병 연대의 방어에 막혀 대부분의 병력이 전멸하고 일부가 도하했지만 모두 포로로 잡혔다. 8월 9일 9시 30분 무렵 미 제1기병 사단장 게이 소장은 사단 예비대에 M-24 경전차 5대를 배속시켜 금무봉 탈환을 지시하였다. 그러나 북한군의 완강한 저항에 막혀 금무봉 탈환에 실패하였다. 8월 10일 미군은 금무봉에 대한 공군의 폭격을 감행하면서 탈환을 시도했으나 오히려 미 제1기병사단의 부사단장과 참모장 일행이 북한군의 기습에 의해 사상되었고, 오후에는 게이 사단장이 전투 상황을 파악하던 중에 박격포 공격을 받아 사단장과 부관을 제외한 일행 전원이 사상되는 피해를 입었다.

자고산 전투에서는 8월 15일 아침 북한군이 303고지를 기습하자 제2대대는 225고지로 철수를 시도하였다. 그 과정에서 박격포 소대는 북한군의 포로가 되고, 고지 정상에 있던 G중대는 포위되었다. 이에 미 제5기병 연대는 15일과 16일 아침에 전차 소대와 연대 예비 중대를 동원해 G중대 구출을 시도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16일 밤에 G중대는 북한군의 포위망을 뚫고 225고지로 이동하는 데 성공하였다. 8월 14일 아침, 북한군 제3사단의 병력이 303고지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할 무렵 미 8군은 일본 도쿄에 위치한 유엔군 총사령부에 북한군이 집결해 있던 낙동강 주변에 융단폭격을 실시할 것을 건의하였다. 미 제1기병사단의 게이 사단장은 국군 제1사단이 방어하고 있는 왜관 동북 지역 유학산 북쪽 일대까지 공중 폭격을 수차례 건의했지만 미 공군은 지형 상 유엔군 및 국군에게 오폭될 것을 염려해 우선 낙동강 안에만 실시키로 했다.

[결과]

금무봉 전투에서 게이 사단장은 경전차 소대를 왜관의 한실[금산리] 방향으로 보내 금무봉 후면을 공격하면서 보병을 돌격시키는 협격으로 오후 4시 무렵 금무봉을 완전히 탈환하였다. 금무봉 전투로 북한군은 1천여 명 중 금무봉에서 3백 내지 4백명, 소룡골에서 2백 명이 사살되었고, 미군은 사망 14, 부상 48명의 피해를 입었다. 금무봉전투로 북한군 제3사단은 남은 병력이 2천 5백 명 밖에 되지 않았다.

자고산 전투에서는 8월 16일 일본 요꼬다(橫田)와 가데다(嘉手納)에서 출격한 B29기 5개군 96대는 11시 58분부터 26분 동안 왜관 서북 지역에 400~900㎏형 폭탄 약 900톤을 투하하였다. 이와 같은 융단폭격은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최대 규모였다. 폭격으로 낙동강 대안에 있던 북한군 화력 지원부대는 궤멸되고, 탄약 등 각종 보급품과 유선이 모두 절단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1.04.08 내용 수정 미 제3사단 ->미 제1기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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