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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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東權氏 |
영어의미역 | Andong Gwon Family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도개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헌규 |
세거지 |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도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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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평복1리 |
입향시기/연도 | 조선 중기/1545년 및 1592년 |
성씨 시조 | 권행(權幸) |
입향 시조 | 권동(權東)|권호례(權好禮) |
[정의]
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동과 권호례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칠곡군의 세거 성씨.
[연원]
안동 권씨(安東權氏)는 시조를 권행(權幸)으로 한다. 권행은 본래 신라 왕실의 후예이며 본명은 김행(金幸)이다. 고창군(高昌郡)[현재 안동] 별장(別將)으로 고려 창건 때 왕건을 도와 큰 공을 세워 삼한벽상(三韓壁上) 삼중대광(三重大匡) 태사(太師) 작위를 받았다. 태조 왕건이 김행(金幸)에게 능병기달권(能炳幾達權)이라 하여 권(權)을 성(姓)으로 내리고 고창군을 안동부(安東府)로 승격시키고 식읍(食邑)을 하사하니, 후손이 안동으로 관향(貫鄕)을 삼았다. 당대 9명의 봉군(封君)을 낸 권부(權溥)는 안동 권씨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이외에도 안동 권씨는 조선 초기 최초 대제학(大提學) 및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입향 경위]
칠곡 입향조 권동(權東)의 자는 성초(聖初)이고 호는 석은(石隱)이다. 예빈시(禮賓侍) 참봉(參奉)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기도에서 피난하여 경상도 인동(仁同)으로 왔다가 교남(嶠南) 도개(道開)[현재 석적읍 도개리]에 세거지를 정하여 후손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널리 살고 있다. 권호례(權好禮)는 자는 사경(士敬), 호는 주산(鑄山)이다. 사헌부(司憲府) 지평(持平)으로 재임 때인 1545년(인종 1) 을사사화로 선산(善山) 관심(觀心)에 은거하였는데, 권호례(權好禮)의 후손은 칠곡군 기산면 평복리에 정착하였다.
[현황]
권동의 후손은 도개리에 세거지를 정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널리 살고 있다. 권호례(權好禮)의 후손은 평복리에 정착하여 번창하지는 못하였으나 각계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인구 주택 총조사 「성씨 및 본관 보고서」에 의하면 2000년 700여 가구 2,270여 명이 칠곡군 관내에 살고 있다.
[관련 유적]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에 입향조인 석은(石隱) 권동(權東)의 추모지소인 영모재, 기산면에 주산(鑄山) 권호례(權好禮)의 추모지소인 추원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