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1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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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架山山城操鍊儀式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 산98-1외 11필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삼문 |
[정의]
조선시대 가산산성에 주둔한 군대의 군사훈련.
[연원 및 변천]
가산산성은 산골짜기를 이용하여 쌓은 석성(石城)으로, 내성은 1640년(인조 18), 외성(外城))은 1700년(숙종 26), 중성(中城)은 1741년(영조 17) 각각 완성하였고 칠곡도호부(漆谷都護府)를 설치하였다. 군사들은 봄, 가을마다 군사 훈련과 산성 축조에 동원되었다.
[절차]
『국역 칠곡지』 「성지(城池)」에 따르면, 조선 숙종(肅宗) 때 관찰사 이세재(李世載)의 축성기(築城記)에 군사의 조련(操鍊)에 관한 내용이 간략히 실려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약간의 군사로 독진(獨鎭)으로 만들어 좌영(左營)에서 무예(武藝)를 익히고 봄·가을로 번갈아 조련하여 관장(管掌)하게 할 뿐이었다.··· 또한 순아병(巡牙兵)을 소속시키고 네 읍(邑)의 속오군(束伍軍)으로 옛날부터 본성(本城)에서 무예를 익히던 사람은 그대로 두니 거의 10,800여 명이었다. 이에 농한기에 성을 임(臨)해 크게 모아서 쓸 만한 힘을 과시하고, 징 소리에 그치고 북소리에 떨쳐 일어나는 절도를 알게 하였다. 그런 뒤에 사람들이 모인 상황을 이용하여 더 쌓았는데 남창(南倉) 밖의 좌우 산 모양은 저절로 성터가 되고 돌을 나르고 흙을 북돋우는 일을 줄이니 삼일이 지나지 아니하여 성이 이미 반이나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기록을 미루어 보아 봄·가을로 군사의 훈련이 있었으며, 훈련과 함께 성곽 보수 등 축성의 일도 겸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비국절목(備局節目)』에도 조련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외성(外城)은 중군(中軍)이 오로지 주관(主管)하는데 봄·가을로 군사들을 조련(操鍊)할 때에는 무너지는 곳을 따라 보수(補修)하는데 주장(主將)에게 아뢰고 거행(擧行)한다.··· 성곽 옆에서 군병(軍兵)을 조련할 때마다 해당 성곽을 지키는 군사(軍士)로 하여금 3면은 담을 쌓고 위로는 임시로 집으로 덮어 1면은 통행할 수 있게 열어 출입의 편리를 도모하였다. 한편 예상치 못한 사태에 대비하며 한번 설치한 뒤에도 봄·가을로 군대를 조련할 때 수리하고 보수하여 무너지지 않게 한다.” 또한 “1년 안에 봄에는 중군(中軍)이 여러 읍을 순시하며 살피면서 활쏘기를 시험하는데 한 결 같이 속오군의 예와 같이 거행하고, 가을에는 주장(主將)이 성 밑 평야에 모아 조련하고 예(例)에 의거한 장소에서 조련한 뒤 성에 들어가고 또 성을 사용하여 조련하는 것도 이같이 한다.”라고도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사료를 통해 가산산성 군사훈련의 정확한 내용은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대체적인 군사훈련의 정황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