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59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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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興宣大院君 麒麟胸背 |
영어공식명칭 | Embroidered insignia with auspicious aniaml, kylin of prince Heunseon-Daewongun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의복/의복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321[황금동 70]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희진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820년 - 흥선대원군 기린흉배 흥선대원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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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시기/일시 | 1863년 이후 - 흥선대원군 기린흉배 제작 추정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898년 - 흥선대원군 기린흉배 흥선대원군 사망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9년 1월 23일 - 흥선대원군 기린흉배 국가민속문화재 제65호로 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6월 29일 - 흥선대원군 기린흉배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
소장처 | 국립대구박물관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321[황금동 70] |
성격 | 복식 유물 |
재질 | 금사|견 |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된 개항기 복식 유물.
[개설]
흥선대원군 기린흉배(興宣大院君麒麟胸背)는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1820~1898]의 관복에 달았던 흉배이다. 아들인 고종(高宗)[1852~1919]이 즉위한 1863년 이후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1979년 1월 23일 국가민속문화재 제65호에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현재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70에 있는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연원]
흉배는 조선시대 벼슬아치의 관복인 단령(團領)의 가슴과 등에 붙였던 장식물이며, 착용자의 신분을 나타내고자 품계에 따라 모양, 문양, 재료를 달리하였다. 관복과 같은 색의 사(紗)나 단(緞)에 다양한 문양을 직조하거나 수놓았다. 시대에 따라 흉배의 크기·제작법·문양의 종류와 배치 방법 등이 변화하였는데, 주로 계급을 표시하는 동물을 중심으로 구름·여의주·파도·바위·불로초 등을 주위에 배치하였다. 기린은 조선시대에 이상적인 왕도를 상징하기에 주로 대군이나 세자의 흉배 문양으로 사용되었다.
흥선대원군 기린흉배는 단령 없이 흉배만 한 쌍 남겨져 있다. 『속대전(續大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에 대군의 흉배를 기린으로 한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 흥선대원군에게 대군의 예우를 갖추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기린흉배는 드물지만, 흥선대원군의 초상을 통하여 비교적 다양한 형태의 기린흉배를 찾아볼 수 있다.
[형태]
흥선대원군의 기린흉배는 가로 23.1㎝, 세로 25.5㎝의 검은색 사각 비단 천에 주로 금실로 수를 놓았다. 바람에 날리는 듯한 머리와 꼬리 등의 털, 기린의 자세 등이 표현되어 있다. 몸통의 비늘은 선명하고 입체감이 있다. 기린의 좌우 상단에는 구름무늬가 있고, 하단에는 구름, 바위, 물결 등을 배치하였다.
[용도]
흥선대원군 기린흉배는 흥선대원군이 궐에서 집무를 보거나 궁중 의식에 참석할 때 입었던 상복(常服)인 단령에 사용하였던 흉배이다. 기린흉배는 단령의 가슴과 등에 부착하였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흥선대원군 기린흉배는 대군의 기린흉배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에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이다. 흉배 제도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바뀌는데, 1882년 이후에는 흥선대원군이 거북흉배를 사용하였다. 따라서 기린흉배는 개항기 복식의 흐름을 연구하는 데에서 복식사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