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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지역 민간인학살사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20337
한자 東區地域 民間人虐殺事件
영어공식명칭 Civilian Massacre in Dong-gu
이칭/별칭 동구 지역 양민 학살 사건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건

[정의]

한국전쟁시기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

[역사적 배경]

동구 지역 민간인학살사건에는 국민보도연맹, 한국전쟁 발발 등이 주요한 배경이었다.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4월 좌익사상가 전향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조직된 관변단체인데, 1948년 12월 시행 공포된 「국가보안법」의 구체적 운용 대책으로 조직되었다. 한국전쟁을 전후 시기 국민보도연맹들에 대한 대량 학살이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을 비롯한 전국에서 자행되었다.

[경과]

1960년 10월 1일에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군경에 의하여 학살당한 민간인들의 유골 발굴 작업을 해오던 경북지구피학살자유족회는 대구광역시 동구 만촌동에 위치한 형봉산 골짜기에서 28구를 발굴했다. 경북지구피학살자유족회에서는 당시 학살자들이 죽인 민간인 시체 매장 작업에 참가했던 주민들의 증언과 시체를 매장할 때 시신의 주머니에서 나온 신분증으로 추측해 보면, 희생자들은 대구광역시 주민들로 보인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지묘동[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효목동[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고모동[지금 대구광역시 수성구 고모동] 등지에서도 민간인 학살이 이루어졌음이 경북지구피학살자유족회의 발굴사업을 통해 규명되었다. 이는 4.19혁명 시기 경상북도청 사회과에 신고서가 접수된 사망자명단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이 신고서에 따르면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의 불로동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가운데 지묘동, 신암동 등지 주민들이 학살당한 것으로 확인된다.

[결과]

동구 지역 민간인학살사건에 대한 역사적 규명 작업은 1960년 일어난 5·16군사정변으로 인해 좌절되었다.

[의의와 평가]

팔공산을 제외한 대부분 동구 지역은 인민군 비점령지임에도 불구하고 예방차원에서 국가권력이 민간인에 대한 학살을 자행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전쟁 전후 시기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민간인의 유해를 발굴하여 명예를 회복시키고, 희생자를 위한 위령사업이 사회적으로 요구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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