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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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崗濟 |
영어공식명칭 | Cho Gangjae |
이칭/별칭 | 파산고방(巴山高芳)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재성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조강제(趙崗濟)[1923~1950]는 1923년 3월 30일 지금의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교내 비밀결사 조직인 문예부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활동 사항]
조강제는 1940년 11월 23일 대구사범대학교 비밀결사 윤독회(輪讀會)를 계승하여 결성된 문예부의 2차 모임 때 추가로 가입하였다. 문예부는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하여 표면상으로는 문예 활동을 표방하였고, 1940년 11월부터 1941년 3월까지 약 9회의 모임을 열었다. 조강제는 1941년 3월 대구사범학교를 자퇴하고 고향인 함안에 내려가 사설강습소를 열고 농촌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1941년 7월 말 대구사범학교 8기생으로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정현(鄭鉉)이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이후 가택 수색 과정에서 윤독회가 발간한 항일 문예지 『반딧불』이 발각되어 대구사범학교 내 비밀결사 조직이 드러났다. 그 결과 경찰의 수사가 확대되어 대구사범학교 내 비밀결사 조직이었던 백의단·윤독회·문예부·연구회·다혁당에서 활동한 교직원·학생·동문·학부형 등 300여 명이 체포되었다. 조강제도 이때 체포되어 경찰의 조사를 받았으며, 1943년 11월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조강제는 1948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여 출옥한 뒤 대한민국 국군에 입대하여 복무하다가 1950년 한국전쟁 때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조강제의 공적을 기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