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3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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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洛哲 |
영어공식명칭 | Choi Nakcheol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삼조 |
출생 시기/일시 | 1921년 11월 22일 - 최낙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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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41년 1월 23일 - 최낙철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 연구회 결성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41년 2월 15일 - 최낙철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 다혁당 결성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41년 4월 1일 - 최낙철 나진 약초공립국민학교 훈도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941년 8월 - 최낙철 일제 경찰에게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44년 2월 8일 - 최낙철 징역 5년형 언도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8월 - 최낙철 광복 후 출소 |
활동 시기/일시 | 1986년 - 최낙철 파주 삼광중학교 교장 취임 |
몰년 시기/일시 | 2005년 8월 6일 - 최낙철 사망 |
출생지 | 은산리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은산리 |
학교|수학지 | 대구사범학교 - 대구광역시 중구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묘소 |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222-17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다혁당 당원|삼광중학교 교장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최낙철(崔洛哲)[1921-2005]은 1921년 11월 22일 지금의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은산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교내 비밀결사 조직인 연구회·다혁당(茶革黨)을 결성하고 활동하여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활동 사항]
최낙철은 대구사범학교 심상과 졸업을 앞둔 1941년 1월 23일 오후 8시경 이무영(李茂榮)·임굉(林宏)·장세파(張世播)·윤덕섭(尹德燮)·이태길(李泰吉)·안진강(安津江)·강두안(姜斗安) 등과 함께 비밀결사 조직인 대구사범학교 연구회를 결성하였다. 연구회는 대구사범학교 교과목을 중심으로 교육부를 비롯한 9개 부서를 두었는데, 최낙철은 지리부 책임을 맡았다. 연구회 성원들은 2월 1일경부터 3월 17일까지 6회에 걸쳐 강두안의 하숙집과 소나무숲에서 모여 국제 정세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고, 각자 가장 좋아하는 학문 분야의 최고 권위자가 되어 독립을 위하여 협력·매진하기로 결의하였다. 또한 졸업 후 국민학교 훈도로 봉직하게 되면 우수한 제자들에게 수재 교육을 실시하여 독립에 필요한 인재들을 양성하기로 계획하였다. 이를 위해 수재 교육의 경과 상황을 매월 1회 사무원에 보고할 것 등을 협의하였다.
1941년 2월 15일 최낙철은 권쾌복(權快福)·배학보(裵鶴甫)·유흥수(柳興洙)·문홍의(文洪義)·서진구(徐鎭九)·문덕길(文德吉)·이주호(李柱鎬) 등과 함께 기존의 문예부·연구회를 발전적으로 확대 개편한 비밀결사 조직 다혁당 결성에도 참여하였다. 최낙철은 1941년 4월 함경북도 나진의 약초공립국민학교 훈도로 부임하여 학생과 학부형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등 연구회의 결의에 따라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1년 7월 말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 윤독회(輪讀會)[문예부의 전신]가 발간한 항일 문예지 『반딧불』이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어 대구사범학교 내 비밀결사 조직이 드러났다. 그 결과 경찰의 수사가 확대되어 대구사범학교 내 비밀결사 조직이었던 백의단·윤독회·문예부·연구회·다혁당에서 활동한 교직원·학생·동문·학부형 등 300여 명이 체포되었다. 최낙철도 1941년 8월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고, 1942년 1월 대전지방법원 예심부에 송치되었다. 1943년 2월 8월 예심이 종결되어 재판에 회부되었고, 1944년 2월 8일 징역 5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여 출소하였다. 최낙철은 광복 후 교직에 종사하여 1986년에는 경기도 파주 삼광중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최낙철은 2005년 8월 6일 사망하였다.
[묘소]
최낙철의 묘소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222-17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최낙철의 공적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