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12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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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婚禮 |
영어공식명칭 | Wedding Ceremony |
이칭/별칭 | 결혼식,혼인식,혼례식,전통 혼례,평생 의례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순희 |
[정의]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혼인과 관련되어 행하는 의례.
[개설]
혼례는 인륜지대사로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반려자가 되어 한평생을 같이 살기 위하여 의례를 지내는 것이다.
[연원 및 변천]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보면 환웅이 웅녀와 혼인을 하여 한겨레의 나라를 열었다고 한다. 이것으로 보아 삼국 이전의 시기부터 혼례는 이루어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고, 평생 의례로서 우리의 역사 속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절차]
충청남도 당진에서는 혼담이 오가면 '납채(納采)'라 하여 남자 측에서 여자 측에 혼인을 정했음을 알리는 것으로 신랑 될 남자의 생년월일시를 적은 사주를 보냈다. 그러면 여자 측에서 남자 측에 혼인날을 택일해 보내는 '납기(納期)'가 이루어졌다. 다음은 '납폐(納幣)'라 하여 남자 측에서 여자 측에 혼서와 예물[채단(綵緞)]을 보내고 받는다. 혼례 당일이 되면 '대례(大禮)'라 하여 신랑이 여자의 집에 가서 초례상을 차려 놓고 부부가 되는 의식인 초례(醮禮)을 한다. 혼례가 끝나면 신부의 집에서 신방을 꾸미고 잔다. 다음 날에는 '우귀(于歸)'라고 하여 신부가 신랑을 따라 시댁으로 들어간다.
혼례식 당일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혼례 날 아침, 신랑은 사당에 들러 고사를 드리고 신랑의 아버지는 "너를 도울 배필을 맞아 종사를 잇되 공경으로 힘써 거느리고 법도 있게 하여라."라고 훈시를 한다. 신랑은 사모·단령·관대·흑화로 예장하고 백마나 교자를 타고 등룡을 앞세워 신부의 집으로 향한다. 이때 신랑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동행하는데, 이를 후행(後行) 또는 상객이라 한다. 신부는 칠보단장으로 단장하고 원삼[활옷]과 족두리를 갖춰 성장을 하고 신랑을 기다린다. 신랑 일행이 당도하면 초순배라 하여 간략한 음식상을 먼저 차려 대접한다. 혼례가 시작되면 신랑이 먼저 식장에 들어간다. 이때 안부(雁夫)는 목안을 홍보에 싸서 들고 뒤를 따르고 전안례로 예식을 시작한다. 신부 측 접대인이 신랑에게 인사를 한 후 신랑이 전안상 앞으로 간 후, 안부로부터 기러기를 받아 기러기 머리가 왼쪽으로 향하게 하고 앉는다. 신랑이 기러기를 전안상 위에 올려놓은 후, 천지신명에게 서약하는 절을 두 번 한다. 신부 측 시녀가 나와 기러기를 치마로 싸안고 내실로 들어간다.
다음은 대례청(大禮廳)에서 행해지는 대례로서 교배래(交拜禮)와 근배례(巹杯禮)의 절차가 이어진다. 교배례는 신랑이 대례청 동쪽 자리에서 동북쪽으로 약간 돌아서 외면하고 선 후, 신부가 연지곤지를 찍고 백주 한삼으로 얼굴을 가리고 수모의 부축을 받으며 대례상 서쪽 자리에 선다. 신랑이 신부를 향하여 바로 선 후에 신랑과 신부가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씻고 수건으로 닦는다. 신랑이 신부에게 읍을 하고 대례상 가까이 선다. 신부가 신랑에게 두 번 절을 하면 신랑이 답으로 한 번 절을 한다. 다시 신부가 절을 두 번 하면 신랑이 답으로 또 한 번 절을 한다. 신랑과 신부가 무릎을 꿇고 앉는다.
다음은 근배례이다. 신부 측에서 사발에 술을 부어 신랑 측에 보내면 신랑은 땅에 조금 부어 좨주[제상에 올렸던 잔을 퇴하여 모사에 세 번 지우는 행위]한 다음 조금 마신다. 신랑 앞에 있는 사발에 집사가 술을 따라 신부 쪽에 보내면 신부는 부제(不祭)라 하여 땅에 붓지 않고 조금 마신다. 다음 신랑 쪽에서 먼저 표주박에 술을 부어 신부 쪽에 보내고, 그다음 신부 쪽에서 표주박에 술을 부어 신랑 쪽에 보내어 조금씩 마신다. 신랑의 표주박 술은 높이 들어 위로 대례상을 넘기고 신부의 표주박 술은 낮게 들어 대례상을 넘겨 바꾸어 조금씩 마신다. 이때도 부제라 하여 땅에 붓지 않고 불효라 하여 세 번 다 안주를 들지 않는다. 이 세 번째 바꾸어 마시는 잔은 두 번째 신랑신부가 조금씩 마시고 남긴 잔을 바꾸어 마시는 것이다. 방식이 조금 다른 경우, 합환주(合歡酒)라 하여 신랑신부의 술을 한 그릇에 합쳐 한 잔으로 만들어 그것을 신랑이 마시고 남은 것을 또 신부가 마시기도 한다. 표주박 잔은 원래 한 통의 박이 나누어 두 개의 바가지가 된 것처럼 다시 합해서 하나가 된다는 의미이다.
혼례식이 끝나면 신방에 병풍을 둘러치고 화촉을 밝히고 술과 음식을 자리에 차려 놓는다. 신랑은 신부의 족두리를 벗긴 다음 활옷을 벗긴다. 이때 가까운 친척 되는 부인들이 신랑신부에게 혹 이변이 있을까 염려하고 신방을 지킨다. 이것을 '신방 지키기'라 하는데, '신방 엿보기'로 풍습이 바뀌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예전의 결혼식에서는 국수를 대접하며 잔치를 베풀었는데, 국수의 길이처럼 잘 살라는 의미이다. 당진에서는 신랑이 혼례를 마치고 며칠 후 재행(再行)이라 하여 장인과 장모에게 인사를 갔다. 이것을 '동상례'라고도 했다. 이때 동리 젊은이들이 신랑을 납치하여 매달아 놓고 발바닥을 때리며 "왜 남의 동리 처녀를 훔쳐갔느냐? 육례를 갖추었느냐?" 하면서 문초했다. 이를 '신랑 단다'고도 했다. 신랑의 아픔과 도량을 시험하며 서로 얼굴을 익히고 즐기자는 것이다. 장모는 이때 맛있는 음식을 내놓으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했다.
[혼인의 조건]
예전 혼인의 조건으로는 혼인할 남녀가 동성동본(同姓同本)이 아닐 것, 남자 18세, 여자 16세 이상일 것, 근친이 상중(喪中)이 아닐 것 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