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4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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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咸悅南宮氏世居地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민아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함열 남궁씨 세거지.
[개설]
함열남궁씨(咸悅南宮氏)는 삼각산에서 흘러 내려온 무수천을 따라 세거지가 형성되었는데, 그 일대에 종친회 사무실과 재실인 ‘무수재실(无愁齋室)’을 가지고 있는 유래가 깊은 성씨이다.
[명칭 유래]
함열은 전라북도 익산시에 속해 있는 지명이다. 함열남궁씨의 시조 남궁원청(南宮元淸)은 고려 시대 함열에 살았던 사람이다. 비서랑(秘書郞)을 역임하였으며, 송(宋)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한 후 여진족 토벌에 큰 공을 세웠다. 이에 후손들은 남궁원청을 시조로 삼아 지금까지 대를 이어오고 있다.
[형성 및 변천]
함열남궁씨가 정확히 언제 무수천 일대에 입향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재실인 무수재실 위로 13세 남궁계(南宮啓)와 부인인 능성 구씨의 단(壇)이 있고, 그 아래로 14세 남궁치(南宮致) 부부 묘가 있어 적어도 조선 전기까지 올라간다. 이곳에 세거한 승지공 남궁회(南宮恢)의 아버지는 17세 남궁숙(南宮淑)[1491~1553]인데, 그가 성주 목사를 지낸 후 그곳에 유배 와 있던 묵재(黙齋) 이문건(李文建)[1495~1567]이 그의 선정비를 썼다. 특히 함열남궁씨인 남궁복(南宮墣)[1887~1970]이 양주 향교 전교를 지내면서 도봉 서원 복설에 큰 공을 세워 도봉 서원 건물 우측에 남궁복을 기념하는 비가 세워졌다.
[현황]
2012년 현재 무수천 일대에 거주하는 함열남궁씨 대부분은 18세 승지공 남궁회를 파조로 하는 후손들이다.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86번지와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69-7번지 일대에 함열남궁씨 묘역이 있다. 원래 도봉산은 함열남궁씨의 종중산이었으나 일제 강점기 국가에 귀속되고, 도봉산 일대 0.43㎢[약 13만 평] 정도가 남궁씨의 종중 재산으로 남아 있다. 도봉 서원 건물 오른쪽 느티나무 사이에 세워진 ‘성균 박사 노은 남궁복 선생 기념비’는 남궁복의 아들 남궁련이 거액을 회사하여 도봉 서원 복설에 큰 공을 세운 것을 기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