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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 묵란도 병풍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259
한자 德成女子大學校博物館所藏墨蘭圖屛風
이칭/별칭 석파묵국팔첩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경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가 생년 시기/일시 1820년 12월 21일 - 묵란도 병풍 작가 이하응 출생
창작 시기/일시 1883년 4월 8일[음력] -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 묵란도 병풍 그림
작가 몰년 시기/일시 1898년 2월 9일 - 묵란도 병풍 작가 이하응 사망
소장처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419지도보기
성격 회화
양식 사군자
작가 이하응
재질 수묵
소유자 덕성여자대학교
관리자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흥선 대원군 이하응의 묵란도 병풍 그림.

[개설]

이하응(李昰應)[1820~1898]은 조선 말기의 왕족이자 정치가이며 서화가이다. 자는 시백(詩伯), 호는 석파(石坡), 본관은 전주이다. 조선 왕조 제26대 고종(高宗)의 아버지이며, 흔히 대원군(大院君)이라 불렀고,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은 봉작명이다. 정치적 야망으로 집권과 하야를 반복했지만 서화에 능하였으며, 특히 예서와 묵란화(墨蘭畵)에서는 개성 있는 뛰어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청년 시절에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문하에서 글씨와 그림을 배우면서 많은 문예인과 교류하였으며, 묵란화에서는 ‘석파란(石坡蘭)’이라고 불릴 정도로 구도법과 필묵법에서 독특한 화풍을 이루어 한국식 묵란 화풍의 전형을 이루었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내용]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 묵란도 병풍(德成女子大學校博物館所藏墨蘭圖屛風) 대원군 이하응이 1883년 중국 청나라 보정부(保定府)에 유폐되어 있던 초기 시절에 그린 그림이다. 전체 총 8폭의 병풍에 이하응의 다양한 묵란화 양식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 묵란도 병풍의 제1폭과 제2폭은 석란화 형식으로, 제3폭~제6폭은 군란화 형식으로, 제7폭과 제8폭은 총란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폭은 화면 오른쪽 중앙 부분에 크게 바위를 두고 상하로 난을 배치하고 왼쪽에는 제문을 길게 써 넣었다. 제2폭은 화면 왼쪽 하단 부분에 작은 바위를 두고 상하로 난을 배치하였다. 제3과 제4폭은 한 폭의 화면처럼 사용하여 화면 중앙 부분에 군란을 배치하고, 하단에서는 좌우에 치우져 군란을 가득히 배치하였다. 제5폭과 제6폭은 제3폭~제4폭과 동일한 배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제7폭과 제8폭은 화면의 양쪽 가장자리에 상단으로 2/3부분까지 길게 난을 배치하였으며, 제8폭에는 오른쪽에 관서를 달았다.

덕성 여자 대학교 박물관 소장 묵란도 병풍 의 제일 마지막 폭 관서에는 “계미년 이른 여름, 비오는 사월 초파일날에 보양공관에서 대나무 발을 드리우고 차 향기를 맡으며 노석 도인이 그리다.[癸未肇夏 浴佛雨日 老石道人寫于保陽公館 淸簾茶煙下]”라고 씌여 있어, 이 작품이 1883년 음력 4월 8일에 제작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당시 대원군 이하응은 임오군란[1882년]을 계기로 정권을 다시 잡았다가 34일[1882년 6월 10일~7월 12일] 만에 중국 청나라 장수 정여창에게 납치되어, 청나라 천진(天津)의 보정부에서 3년 2개월간 감금 생활을 하고 있던 시기이다.

[의의와 평가]

덕성 여자 대학교 박물관 소장 묵란도 병풍 이하응이 청나라 보정부 생활을 시작한지 8개월 만에 그린 그림이다. 정치적 격변과 이국 생활의 한을 이 작품에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하응은 평생 동안 오직 ‘난’만을 소재로 그렸으며, 그에게 묵란화는 자신을 바로잡고, 자신의 심경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이하응은 직곡산방(直谷山房) 시절에 즐겨 사용하던 묵란화 형식인 배경적 요소와 함께 그린 석란화 형식, 노근란을 중심으로 한 군란화 형식, 종축의 총란화 형식 등 지금까지의 화풍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모든 묵란화 화풍을 이 작품에 담아내었다.

화면 가장자리에 바위를 두고 그 상하로 난을 배치하는 전형적인 석란화 구도법을 따르고 있다. 제4폭과 제5폭에서 언덕 위에 총란은 1879년의 「총란도」 양식을 보이고 있다. 제7폭과 제8폭의 총란도는 직곡산방 시절에 그린 총란도와 유사성이 강하다. 그러나 농묵으로 처리된 부자연스런 바위, 꽃이 많이 달린 깃대, 다소 경직된 필치 등에서 과거와는 다른 표현 방식을 보여 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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