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1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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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成女子大學校博物館所藏統營五廣大-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작품/미술과 공예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경섭 |
작가 생년 시기/일시 | 1899년 - 통영 오광대 탈 작가 오정두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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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몰년 시기/일시 | 1983년 - 통영 오광대 탈 작가 오정두 사망 |
소장처 |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419 |
성격 | 탈 |
작가 | 오정두 |
재질 | 박|모피|오동나무|대나무|종이 |
소유자 | 덕성여자대학교 |
관리자 |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1970년대에 제작된 통영 오광대 놀이 탈.
[개설]
탈놀이는 예로부터 낙동강 서쪽 지방에서는 ‘오광대(五廣大) 놀이’, 낙동강 동쪽 지방에서는 ‘들놀음[野遊]’ 등으로 불렀다. 통영 오광대의 전파 경로는 밤마리 오광대→마산 오광대→통영 오광대로 이어진 것으로 전하며, 1900년경 창원에서 오광대를 놀던 이화선(李化善)이 통영으로 이사와 전파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58년 ‘민속 예술 대전’부터이며, 1964년에 국가 무형 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다.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 통영 오광대 탈[德成女子大學校博物館所藏統營五廣大탈] 은 통영 오광대 탈놀이에 사용되던 탈로서 1970년대에 오정두(吳正斗)[1899~1983]가 제작하였다. 28점의 탈과 애기 인형 1점, 모자 등 소품을 모두 합쳐 38점의 통영 오광대 탈 관련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오정두는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나 충무시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어릴 때부터 20여 년간 통영갓 제작공으로 활약하였으며, 1933년 박정대(朴正大)에게서 통영 오광대 탈 제작법을 배웠다.
통영 오광대는 주로 경상남도 통영 지역의 계(契) 모임에 의해 조직되었는데, 박정대는 1910년대에 장용기(張容基)가 주역으로 활동하였던 난사계(蘭社契)의 대표적인 탈 제작자였다. 오정두는 1920년대 장재봉(張在奉)을 주역으로 한 춘흥계(春興契)의 일원이자 탈 제작자였다. 1940년 말에 오랫동안 사용해 오던 춘흥계의 탈이 소실되자 장재봉과 오정두가 중심이 되어 1950년 말에 새롭게 오광대 탈을 제작하였다. 이 시기에 복원된 탈들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후 오정두는 국가로부터 국가 무형 문화재인 통영 오광대 가면 제작 및 영노·악사 기예능 보유자로 1964년 12월에 지정받았다. 오정두의 제자로는 이기숙이 있다.
[형태]
덕성 여자 대학교 박물관 소장 통영 오광대 탈 은 1970년대에 오정두가 제작하였으며, 제작자에게 직접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다. 오광대 탈은 문둥이 탈, 풍자 탈, 영노 탈, 농장 탈, 포수 탈 등의 중요 탈과 함께 20여 개의 탈로 구성되어 있다. 사용된 재료는 오동나무, 대나무, 박, 종이 등 다양하다. 1900년 초에 오동나무로 제작되었다는 전통에 따라 현재 오동나무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1930년대 탈들은 대부분 박 바가지로 제작되었다.
문둥이 탈은 지름 약 30㎝ 내외의 크기로 오광대 탈 중에서도 두 번째로 크게 제작되었다. 대소쿠리에 얼굴 외곽으로 커다란 테두리를 두르고 커다란 둥근 눈, 비뚤어진 큰 입, 그리고 커다란 돌기 등 문둥이가 된 양반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표현하였다. 말뚝이는 오광대 중에서 가장 큰 탈로 지름이 약 40㎝ 내외이다. 부리부리한 큰 눈에 큰 입, 광대뼈 부근에 커다란 혹, 검고 긴 눈썹과 콧수염 등 갈색의 붉은 얼굴에 강인한 인상을 준다. 그 외 영노[비비새] 탈은 용머리 모양, 포수 탈과 담보 탈은 호랑이 얼굴 형상을 하고 있고, 몸통 부분에는 긴 자루를 달아 그 속에 1~2명의 사람들이 들어가 공연하도록 제작되었다.
[내용]
덕성 여자 대학교 박물관 소장 통영 오광대 탈 의 28개 중에서 8개~9개가 양반탈이다. 일그러진 양반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문둥이 양반, 할미 양반, 홍백 양반, 비틀 양반, 곰보 양반, 검정 양반, 원양반, 영노 양반 등 다양하다. 대부분 완만한 타원형의 바가지로 얼굴 형상을 만들고 주어진 명칭에 따른 특징적 요소만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재료와 채색이 다양하고, 형상이 강렬하여 공연의 역동성을 배가시키는 탈들이다. 이와 같이 통영 오광대 탈은 양반 사회를 비판하고 그들과 맞서 싸워 새로운 위계질서를 세우려는 과정들을 해학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덕성 여자 대학교 박물관 소장 통영 오광대 탈 은 비교적 내용이 충실하게 보존되어 있으며, 탈의 숫자도 가장 많고, 연희도 세련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서민을 억압하는 양반 계층에 대한 사회 비판, 처첩 관계의 폭로를 통한 봉건적 가족 제도에 대한 비판을 해학과 풍자로 담아내고 있다. 또한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탈의 형태도 특성이 강하다. 주름의 표현이 많고, 원색보다는 배색을 선호하며 색보다는 선을 강조하였다. 왜곡과 과장 혹은 생략적인 표현 기법을 많이 사용하였다. 이러한 과감한 생략과 추상적 표현은 여과시키지 않은 서민들의 심정을 솔직하게 담아내고 있어 민속적 가치가 우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