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07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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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蔡得沂 |
영어음역 | Chae Deukgi |
이칭/별칭 | 영이(詠而),우담(雩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룡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경일 |
성격 | 선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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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 |
성별 | 남 |
생년 | 광해군 대 |
몰년 | 인조 대 |
본관 | 인천 |
대표관직 | 집의 |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가계]
본관은 인천. 자는 영이(詠而), 호는 우담(雩潭). 아버지는 채유종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서 출생하였다.
[활동사항]
경사백가에 통달하고, 특히 역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지리·의학·복서·음율 등에 밝았다. 1630년(인조 8) 천문을 관측해 보고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있을 것을 예측하고 고향인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 물언덕에 정자를 짓고 독서했다.
병자호란 후 심양에 볼모로 가는 왕자를 호종하라는 왕명에 병을 이유로 나가지 않아 1637년(인조 15)부터 3년간 보은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다. 그 후 풀려나서 심양에 가 봉림대군에게 병법을 전하고 돌아왔다. 그 후 도망쳐 상주 자천대(自天臺)에 들어가 출입을 끊고 독서하다 죽었다.
[묘소]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막골 천마산 아래에 있다.
[상훈과 추모]
1789년(정조 22)에 집의(執義)에 추증되었고 상주의 상의사(尙義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