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11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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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川蔡氏 |
영어의미역 | Incheon Chae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영규 |
세거지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 물언덕[왕자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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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시기/연도 | 1400년 전후 |
성씨시조 | 채선무(蔡先茂) |
입향시조 | 채신보(蔡申保) |
[정의]
채선무를 시조로 하고 채신보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연원]
인천채씨(仁川蔡氏)의 시조는 채선무(蔡先茂)이다. 채선무는 고려 때 동지원사(同知院事)를 지내고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에 추증(追贈)되었다. 인천에 정착하여 세거하였으므로 후손들이 인천을 관향(貫鄕)으로 삼게 되었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 시조 채선무의 손자 채보문(蔡寶文)은 고려 의종(毅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역임하고 금성백(錦城伯)에 봉해졌다.
[입향경위]
시조의 13세손인 남양도호부사(南陽都護府使) 채신보(蔡申保)[1420~1489]가 벼슬에서 물러나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 물언덕에 은거하면서부터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현황]
채신보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 사람이다. 1455년(세조 1)에 함창현감(咸昌縣監), 1458년(세조 4)에 음성현감(陰城縣監), 1482년(성종 13)에 남양도호부사를 지냈다. 1484년(성종 15)에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인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 물언덕 소산정사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다.
채신보의 아들 채수(蔡壽)[1449~1515]는 1468년(세조 14)에 생원시에 급제하고 이듬해 추장시(秋場詩) 문과에서 초시·복시·전시를 모두 장원하였으며 『세조실록(世祖實錄)』과 『예종실록(睿宗實錄)』 편찬에도 참여했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 채유종(蔡有終)[1561~1606]과 역학 및 경서에 밝았던 채유종의 아들 우담(雩潭) 채득기(蔡得沂)[1604~1647]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 물언덕에서 출생했다.
[관련유적]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 채신보 묘 및 신도비·부인 문화유씨 묘, 채유종의 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