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1654 |
---|---|
한자 | 陰城朴門忠孝烈閣 |
영어의미역 | Memorial Shrine of the Eumseong Bak Clan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민식 |
성격 | 정려건축 |
---|---|
양식 |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집 |
건립시기/일시 | 조선 후기|1952년[중수]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2칸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 |
소유자 | 음성박씨 문중 |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박씨 문중의 충효열각.
[개설]
음성박문 충효열각은 조선 전기의 충신으로 유명한 박순(朴淳)[?~1402]의 충절과 박순의 처 장흥임씨(長興任氏)[?~1402]의 열행, 박호원(朴浩遠)[1559~1627]과 박정규(朴廷珪)[1677~1724]의 효행 등 조선시대 음성박씨(陰城朴氏) 4인의 충효열을 한자리에서 기리기 위하여 조선 후기에 마련한 정려각이다.
박순은 고려 후기인 1388년(우왕 14) 요동정벌 때 이성계의 휘하에서 종군하였으며, 조선이 개국하자 상장군이 되었다. 1398년(태조 7) 왕자의 난 때 태종을 도왔고, 1402년(태종 20)에는 함흥차사를 자원하여 태조의 환궁을 확답받았으나 용흥강에서 태조의 휘하에게 피살되었다.
이에 태종이 박순의 공을 높이 치하하며 판승추부사(判承樞府事)에 증직하고 충신 정려를 내렸다. 박순의 처 장흥임씨는 함흥처사로 떠난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결하였다. 이에 태종이 묘지를 하사하고 고향에 열녀문을 세우게 하였다. 박호원은 1743년(영조 19) 효자로 명정되었고, 박정규 역시 영조 때 효자로 명정되었다.
[변천]
박순의 충신각은 1686년(숙종 12) 삼성면 상곡리에 세워진 뒤 1886년(고종 23) 중수하였다가, 이후 퇴락하자 1970년에 지금의 충효열각에 합설하였다. 박순의 처 장흥임씨의 열녀문은 처음에는 경기도 고양시 벽제면 성석리에 있었으나 순조 때 후손인 박래복(朴來復)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음성박문 충효열각은 1952년과 1978년 2차에 걸쳐 단청 및 중수를 하였고, 1997년에 보수하였다. 1998년에는 내담장과 내문을 신축하였다. 사우 앞에 1998년 박태근(朴泰根)이 찬하고 박제국(朴濟國)이 쓴 ‘충민묘중건기적비(忠愍廟重建紀蹟碑)’가 있다.
[형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앞의 1칸은 툇간이고, 양쪽에는 풍벽을 달았다. 가운데 1칸은 충민공 사당으로 사용하고, 좌우 1칸씩은 충효열각으로 사용하는 특이한 구조이다. 건물 앞 처마에는 ‘충민묘(忠愍廟)’라는 현판을 걸었다. 둘레에 이중 담장을 둘러 외삼문과 내문을 설치하였다.
사당의 오른쪽 칸에는 ‘충신증숭정대부판승추부사행상호군증시충민공박순지문숭정기원후사병술오월일중게(忠臣贈崇政大夫判承樞府事行上護軍贈諡忠愍公朴淳之門崇禎紀元後四丙戌五月日重揭)’와 ‘효자증가선대부호조판서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행수의부위충무위부사용박호원지문숭정기원후사병술오월일중게(孝子贈嘉善大夫戶曹判書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行修義副尉忠武衛副司勇朴浩遠之門崇禎紀元後四丙戌五月日重揭)’라고 쓰여진 현판 두 개를 상하로 걸었다.
왼쪽 칸에는 ‘열녀증숭정대부판승추부사행상호군증시충민공박순처증정경부인장흥임씨지문숭정기원후사병술오월일중게(烈女贈崇政大夫判承樞府事行上護軍贈諡忠愍公朴淳妻贈貞敬夫人長興任氏之門崇禎紀元後四丙戌五月日重揭)’와 ‘효자통훈대부행아산현감홍주진관병마절제도위박정규지문숭정기원후재계해오월일명정(孝子通訓大夫牙山縣監洪州鎭管兵馬節制都尉朴廷珪之門崇禎紀元後再癸亥五月日命旌)’이란 편액이 상하로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
음성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와 관련한 유적으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