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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서원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1672
한자 雲谷書院誌
영어음역 Ungokseowonji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단행본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 산 70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한석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기록물
관련인물 조종학(趙鍾學)|운곡서원
저자 운곡서원
간행자 운곡서원
저술연도/일시 1894년연표보기
간행연도/일시 1897년연표보기
책수 3책
가로 26.4㎝
세로 38.6㎝
표제 雲谷書院誌
간행처 운곡서원
소장처 운곡서원
소장처 주소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 산 70 지도보기

[정의]

1897년에 간행된, 충청북도 음성군운곡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운곡서원 중건 기록문.

[개설]

1990년 12월 14일에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11호로 지정된 운곡서원은, 1602년(선조 35) 충주목사로 있던 정구(鄭逑)[1543~1620]가 이미 있던 서원을 새로 확장한 것으로, 1661년(현종 2)에 정구를 배향하고 서원 이름을 운곡서원(雲谷書院)이라 하였다. 정구는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로 특히 예학(禮學)에 밝았으며, 당대의 명문장가로서 글씨도 뛰어났다.

1676년(숙종 2)에 사액을 받았는데, 『여지도서(輿地圖書)』충청도 충주 감묘조에 “현의 서쪽 일백 십리 되는 지내면에 있는데 서원 이름이 내려졌다. 주자(朱子)를 주향으로 하고 정구를 배향한다(在縣西百十里枝內面 賜額 朱子主享 鄭逑配享)”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때 주자의 영정과 화상찬(畵像讚)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운곡서원은 그후 3백 년 가까이 음성군에서는 유일한 교육기관으로 많은 인재를 배출해 왔다. 그러나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원되었다가 1892년(고종 29) 지방 유림의 발기로 다시 단을 모아 제향하고, 1894년(고종 31)에 서원을 재건하여 이듬해 구 영정을 가져와 봉안하였다. 『운곡서원지(雲谷書院誌)』는 이때의 일을 기록한 중건 기록문이다.

[편찬/발간경위]

『운곡서원지』는 1894년 운곡서원을 중건할 때에 여러 가지 품장(稟狀)을 기록, 정리하여 1897년에 간행한 것으로, 조종학이 숭정기원후오정유(崇禎紀元後五丁酉) 2월에 쓴 발문이 실려 있다. 운곡서원에서는 1910년 이후 최근까지 서원의 유지와 운영을 위한 내용을 기록하여 같은 이름으로 묶고 있다.

[형태]

3책으로, 필사본이다. 표제는 운곡서원지(雲谷書院誌)로, 크기는 가로 26.4㎝, 세로 38.6㎝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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