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17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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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閔徽繼 |
영어음역 | Min Huigye |
이칭/별칭 | 미윤,호암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신평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양병준 |
성격 | 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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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신평리 |
성별 | 남 |
생년 | 1645년 |
몰년 | 1687년 |
본관 | 여흥 |
[정의]
조선 중기의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여흥(驪興). 자(字)는 미윤(美胤), 호(號)는 호암(湖巖). 민홍로(閔弘魯)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민휘계는 집안이 가난하여 낮에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하고, 밤에는 경전(經典)을 읽으면서 생활하니 몸에 걸칠 옷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형제간에 우애가 두터워 한 상에서 밥을 먹고 한 이불에서 자고 같이 글을 읽으면서 잠시라도 떨어지지 않아 집안이 언제나 화목하였다. 아버지가 72세에 병이 위독하자 가난을 무릅쓰고 간병을 하다가 오히려 병을 얻어 44세에 죽었다.
[묘소]
묘소와 정려는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신평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808년(순조 8)에 조정에 민휘계의 효행이 알려졌고, 특명으로 그의 행적을 간행하도록 하여 『존주록(尊周錄)』이라는 책이 발간되었다. 그 해 8월 19일 조봉대부 동몽교관(朝奉大夫 童蒙敎官)이 증직(贈職)되고, 효자 정려가 내려졌다.
정려는 5대손인 민정현과 같은 문(門)에 현액만 달리하고 있으며, 현액에는 ‘효자순조칠년무진증조봉대부동몽교관여흥민공휘계명정(孝子純祖七年戊辰贈朝奉大夫童蒙敎官驪興閔公徽繼命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