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2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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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雲山 |
영어의미역 | Origin of Baegunsan Mountain |
이칭/별칭 | 「서운산」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 |
집필자 | 안상경 |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 있는 백운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백운산(白雲山)[345m]은 삼성면 소재인 덕정리의 서쪽 약 4㎞ 지점인 용성리 서쪽에서 상곡리와 경기도 안성시와 도계를 이루고 있는 경계에 있다.
[채록/수집상황]
2005년 발행된 『음성의 구비문학』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고려 중엽 안성군 이죽면 칠장리 칠장사에 머무르는 한 도승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칠장사 법당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오색영롱한 구름 한 가닥이 종중에 뻗쳐 황홀하게 비치고 있는 것을 보고 필시 상서로운 일이라 생각하고 상좌를 데리고 영롱한 구름이 뻗쳐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동쪽으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허둥지둥 당도하니 서운산(지금의 백운산)이었다.
산이 높은 것도 아니고 웅장한 산도 아닌데, 수목이 울창하니 산새 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 인적은 없는데 흰 구름 같은 서기(瑞氣)가 남쪽에 높이 솟아 햇살에 부딪혀 찬란하기 그지없었다.
도승은 며칠 동안 이 광기에 심취되어 산 밑 마을에서 머물면서 자세히 산세를 살피고 난 뒤 칠장사로 되돌아가 승려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몇 달 후, 서운산 남쪽 중턱에 작은 암자를 세우고 ‘서운암’이라 이름 지었다. 그 후부터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암자의 형세가 날로 번창하였다. 불전에 예불 공양을 하면 소원이 성취되지 않은 것이 없자 서운암의 이름은 세상에 널리 퍼졌다.
이렇게 수백 년을 내려오다가 1592년(선조 25)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인근 마을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서운암으로 몰려들었다. 동년 8월 서운암은 왜군들의 목표가 되어 건물은 전소되고 한줌의 재로 변하였다.
서운암이 소실된 지 10년만인 1602년(선조 35) 충주목사 정구(鄭逑)가 이곳 유생들의 진언을 받아들여 서운산 밑에 운곡서원을 창건하고 산 이름도 서운산에서 백운산으로 개칭하였다. 백운산은 중국 주자가 살던 곳에 있는 명산이라 한다. 산명을 서운이라 부르면 불가(佛家)가 흥성할 것이요, 백운이라 부르면 유가(儒家)가 흥성할 것이라 하여 양자의 명칭을 모두 사용하였다.
[모티프 분석]
고려 중엽부터 시작해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불가와 유가 양쪽에서 관심을 가졌던 산으로 신이한 일이 생기는 것을 구름을 통해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