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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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明澮 |
이칭/별칭 | 자준(子濬),압구정(狎鷗亭),사우당(四友堂),충성(忠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상배 |
출생 시기/일시 | 1415년 - 한명회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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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52년 - 한명회 음서로 출사 |
활동 시기/일시 | 1453년 - 한명회 정난공신 1등에 책봉 |
활동 시기/일시 | 1454년 - 한명회 동부승지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456년 - 한면회 도승지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457년 - 한명회 이조판서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462년 - 한명회 우의정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463년 - 한명회 좌의정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466년 - 한명회 영의정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471년 - 한명회 세조실록 편찬 |
몰년 시기/일시 | 1487년 - 한명회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487년 - 한명회 세조 묘정 에 배향 |
추모 시기/일시 | 1504년 - 한명회 부관참시 |
추모 시기/일시 | 1506년 - 한명회 신원 |
거주|이주지 | 한명회 거주 -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 |
묘소|단소 | 한명회 묘소 -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 속창리 11-1 |
비 | 한명회 신도비 -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 속창리 11-1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청주(淸州) |
대표 관직 | 동부승지|도승지|이조판서|우의정|좌의정|영의정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한강 변에 있었던 압구정을 지은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준(子濬), 호는 압구정(狎鷗亭)·사우당(四友堂)이다. 할아버지는 예문관 제학을 지낸 한상질(韓尙質)이며, 아버지는 한기(韓起)이고, 어머니는 예문관 대제학 이적(李逖)의 딸이다. 1415년(태종 15)에 출생하여 1487년에 사망하였다. 두 딸이 왕후가 되었는데 예종의 비인 장순왕후(章順王后)와 성종의 비인 공혜왕후(恭惠王后)이다. 국구(國舅)로서 영예를 누렸다.
[활동 사항]
한명회는 1452년(문종 2) 음서로 경덕궁직(敬德宮直)에 출사하였으나, 이듬해 세조의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주도하여 정난공신 1등에 책봉되었고, 1453년에 동부승지에 올랐으며, 1456년에는 도승지로 승진하였고 1457년 이조판서에 올라 상당군(上黨君)에 봉해졌으며, 이어 병조판서가 되었다. 이후 황해·평안·함길·강원 등 4도의 체찰사(體察使)를 지내고, 상당부원군(上堂府院君)에 진봉되었으며 1462년에 우의정, 1463년에 좌의정을 거쳐, 1466년 영의정에 오르는 등 요직을 지내면서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후에도 좌익공신, 익대공신, 좌리공신에 책봉되었고, 두 딸을 왕에게 출가시키면서 상당부원군에 봉작되었으며, 세 번이나 재상의 자리에 오르는 등 권력의 핵심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1456년 사육신의 단종복위운동을 좌절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세조가 승하한 이후에는 원상(院相)으로 정무를 직접 처결하였으며, 1468년 남이(南怡)의 옥사를 처결하는데 앞장섰고, 성종의 즉위 과정에서도 공을 세우는 등 모든 국가 중대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비록 태어날 때는 칠삭동이로 태어나 부모를 일찍 여의면서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40세가 넘어 권력의 핵심으로 등장하여 말년까지 권력을 놓지 않았다.
많은 재물을 모은 한명회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의 한강변에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여러 선비들과 모여 시연을 베풀곤 하였다. 이 정자는 중국에도 알려져 사신으로 조선에 오는 사람들이 이곳에 들러 놀려고 하는 자들이 있었고, 중국 사신을 접대한다는 이유로 궁중에서만 쓸 수 있는 용봉차일(龍鳳遮日)을 설치하려고 했다가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성종이 즉위한 이후에는 중국 사신을 접대하고자 하는데 누정이 좁아 이를 확대해 주기를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성종의 제지를 받기도 하였다. 1471년(성종 2)에는 영춘추관사로서 최항(崔恒)·신숙주 등과 함께 『세조실록』을 편찬하였고 또한 성종에게 학문을 진흥시킬 방안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묘소]
한명회의 묘와 신도비는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 속창리 11-1에 있다.
[상훈과 추모]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 연산군의 생모 윤비 폐사(廢死)에 관련되었다 하여 부관참시(剖棺斬屍)되었다가 중종반정 이후 1506년 신원되었다. 1487년 세조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고, 시호는 충성(忠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