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05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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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鏡浦臺賦 |
영어의미역 | Ode to Gyeongpoda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저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호희 |
성격 | 부(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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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이이 |
창작연도 | 1545년 - 강릉:이이, 「경포대부」 지음 |
[정의]
조선 중기의 학자 이이(李珥)가 열 살에 지은 부(賦)
[개설]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에 1748년 경포대가 기울자 부사 조하망(曺夏望)이 누각의 모습을 옛 모습 대로 단장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때 오죽헌에 보관 중이던 「경포대부」를 찾아 그 내용을 가래나무에 새겨 경포대 기둥과 기둥 사이인 문설주 윗부분에다 걸었다고 한다. 「경포대부」는 『율곡전서(栗谷全書)』에 실려 있다.
[창작경위]
「경포대부」의 창작경위가 밝혀진 기록은 없다. 다만 이이가 열 살 때 지었다고 알려져 있을 뿐이다. 이이는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나 유년을 강릉에서 보낸 바 있으며, 그 후에도 강릉에서 지내는 때가 많았다. 오죽헌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는 경포대를 방문한 이이가 거기서 느낀 감흥을 부로써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특징]
경포대의 특징적인 풍경을 봄·여름·가을·겨울로 구분하여 표현함에 있어 중국의 고사를 비유적으로 인용하였다. 「경포대부」의 앞부분은 경포대의 경치를 시각적으로 묘사한 내용이, 뒷부분은 자연을 통해 성정을 다듬어 경세제민(經世濟民)의 뜻을 펼칠 것을 강조한 내용이 있다.
[의의와 평가]
「경포대부」는 단순히 경포대의 실경만을 표현한 시문이 아니다. 마음을 비워 사물에 응하고 일을 합당하게 하면 정신이 일그러지지 않아 안으로 뜻이 지켜질 것이며,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하는 것은 곧 인지(仁智)를 사모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이는 이러한 자연을 매개로 성정을 다듬어 사직(社稷)의 신하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