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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복선생정공권학흥교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2758
한자 愚伏先生鄭公勸學興敎碑
영어음역 Ubok Seonsaeng Jeonggonggwon Hakheunggyobi
영어의미역 Memorial Monument for Master Ubok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강원도 강릉시 교동지도보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권학흥교비
건립시기/연도 1933년연표보기
관련인물 정경세(鄭經世)
높이 194㎝
비두너비 81㎝
비두두께 54㎝
비두높이 34㎝
비두재질 화강석
비좌너비 82㎝
비좌두께 60㎝
비좌높이 25㎝
비좌재질 화강석
너비 49.5㎝
비신두께 14㎝
높이 135㎝
비신재질 청석(靑石)
비문찬자 김지빈(金志○)[마모되어 있음]
비문서자 김지빈(金○馪)[마모되어 있음]
소재지 주소 강원도 강릉시 교동 224-2[강릉향교 명륜당 앞]

[정의]

조선시대 중기의 학자인 우복(愚伏) 정경세의 권학흥교(勸學興敎) 정신을 기린 비(碑).

[명칭유래]

정경세(鄭經世)[1563~1633]의 호 ‘우복’을 비의 이름으로 붙였다.

[건립경위]

정경세가 1613년(광해군 5)에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 부사로 부임하여 흥학(興學)과 교화(敎化)에 진력한 점을 후손들에게 전하고 또한 이 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정경세유성룡(柳成龍)에게 사사하여 1582년(선조 15) 진사에 등과하고, 1586년 알성과(謁聖科)에 급제하여 경연관(經筵官)으로 선조에게 시강(侍講)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장으로도 공을 세웠으며 이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냈다. 이기설(理氣說)에 있어서는 이황의 설에 반대하고 이이의 설을 따랐던 인물이다.

[형태]

받침돌 위에 높이 135㎝, 너비 49.5㎝, 두께 14㎝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금석문]

비의 제(題)는 “우복선생정공권학흥교비(愚伏先生鄭公勸學興敎碑)”라고 되어 있다.

[현황]

비석의 보존 상태는 양호하나 뒷면의 찬자(撰者)와 서자(書者) 부분이 마모가 되어 있다. 비석 오른쪽에는 ‘부사이공현중권학비(府使李公顯重勸學碑)’가 서 있고 왼쪽에는 ‘부사신공경진청덕불망비(府使辛公慶晉淸德不忘碑)’가 서있다.

[의의와 평가]

역사적으로 임진왜란을 겪은 어려운 시기에 백성들을 교화하고 나라의 동량(棟樑)을 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올바른 공직자상을 후세에 남겼으니 그 공로가 크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12.19 2011 한자 최종 검토 1613년(광해군 5년)에,1582년(선조 15년) 진사에 ->1613년(광해군 5년)에,1582년(선조 15) 진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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