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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2850
한자 栗谷全書
영어의미역 Complete Works of Yulgok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문헌
관련인물 이이|박세채|이재
저자 이이
간행연도/일시 1814년(순조 14)연표보기
권수 44권
책수 38책
완전성 불완전
판종 목판본
가로 30.1㎝
세로 20.4㎝
어미 상하향2엽화문어미(上下向2葉花紋魚尾)
반곽크기(가로) 20.8㎝
반곽크기(세로) 15.0㎝
행수 11행
한 행의 자수 20자
주석 주쌍행(註雙行)
표제 율곡전서(栗谷全書)
권수제 전서수정범례(全書修正凡例)
판심제 율곡전서
계선형태 유계(有界)
간행처 미상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처 주소 서울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 60-1]

[정의]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율곡 이이(李珥)의 문집을 집대성한 책.

[서지적 상황]

1611년(광해군 3) 시집(詩集) 1권, 문집 9권 등 7책을 해주에서 처음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1682년(숙종 8)에 속집(續集) 4권, 외집(外集) 4권, 별집(別集) 2권을 추가로 편찬하여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1749년(영조 25)에 『율곡전서(栗谷全書)』로 이름을 붙여 총 38권을 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1814년(순조 14)에 전서(全書) 38권과 습유(拾遺) 6권을 합하여 목판본으로 중간(重刊)하였다.

1958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순조 때의 목판본을 대본으로 삼아 2권으로 영인본을 출판하였다. 1978년 율곡사상연구원에서 2권으로 영인본을 간행하였다. 1987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국역 율곡전서』 7권을 간행하였다.

[편찬/발간경위]

율곡 사후 27년 후인 1611년에 시집은 박지화(朴枝華) 등이 편집하고, 문집은 박여룡(朴汝龍) 등이 성혼(成渾)의 도움을 받아 편집하여 해주에서 최초의 『율곡집』을 간행하였다. 여기에는 누락된 것이 많았으므로 1682년에 박세채(朴世采)가 빠진 것들을 모아 속집 4권, 별집 4권, 외집 2권을 편집, 간행하였다.

위의 여러 간본(刊本)은 모두 이이의 중형 이번(李璠)이 기록하여 놓았던 초본을 주로 하여 여러 사람들이 간수하고 있었던 기록들을 널리 모아 엮은 것이었기 때문에 체제가 일관적이지 못하였다. 그래서 1742년(영조 18) 이재(李縡)이이의 5대손인 이진오(李鎭五) 등과 상의하여 시집·문집·속집·외집·별집 등을 한데 합하고, 「성학집요」·「격몽요결」 등을 여기에 보태어 1749년 『율곡전서(栗谷全書)』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간행하였다.

여기에 1814년에 다시 습유 6권과 부록의 속집이 부가되어 해주에서 중간되었는데, 비로소 44권 38책에 이르는 현재의 『율곡전서(栗谷全書)』가 완성을 보게 되었다.

[구성]

책머리에 전서수정범례(全書修正凡例)가 있고, 권1은 사(辭) 2편, 부(賦) 3편, 시(詩) 132수로 되어 있다. 권2는 176수의 시, 권3은 11편의 소차(疏箚), 권4는 8편의 소차, 권5는 8편의 소차, 권6은 8편의 소차, 권7은 17편의 소차, 권8은 20여 편의 계(啓)와 2편의 의(議)가 실려 있다.

권9는 서(書) 17편, 권10은 서 9편, 권11은 서 39편, 권12는 서 30편이 실려 있고, 권 13은 11편의 응제문(應製文)과 서(序) 7편, 발(跋) 5편, 기(記) 9편이 실려 있다. 권14는 설(說) 6편과 찬(贊) 1편, 명(銘) 1편, 제문(祭文) 16편, 잡저(雜著) 18편이 실려 있고, 권15는 「동호문답(東湖問答)」·「학교모범(學校模範)」 등의 잡저, 권16은 향약에 관한 잡저 5편이 실려 있다.

권17은 신도비명 8편과 묘갈명 9편이고, 권18은 묘지명 14편과 행장 7편이 실려 있으며, 권19~26까지는 「성학집요」이다. 권27에는 「격몽요결」과 「제의초(祭儀抄)」, 권28~30까지는 「경연일기(經筵日記)」이며, 권31~32는 어록이다. 권33은 부록으로 세계도(世系圖)와 연보 상(上)이며, 권34는 연보 하(下)와 문인록, 권35는 김장생(金長生)이 쓴 행장, 권36은 시장(諡狀)과 신도비명, 권37은 「묘표음기(墓表陰記)」, 권38은 제가기술(諸家記述) 등이 실려 있다. 권39부터 권44까지는 습유(拾遺)이다.

[형태서지상의 특징]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고 3648-62-931]은 목판본으로 본집 24권 22책, 습유 3권 3책 합하여 27권 25책이며, 1814년(순조 14)에 간행되었다. 표제는 『율곡전서(栗谷全書)』이고, 책의 크기는 가로 30.1㎝, 세로 20.4㎝, 상하향2엽화문어미(上下向2葉花紋魚尾)이며, 사주쌍일(四周雙逸) 반곽(半郭)의 크기는 가로 20.8㎝, 세로 15.0㎝이다. 계선(界線)이 있고 행수는 11행(行), 한 행의 글자수는 20자이며 주(註)는 쌍행(雙行)으로 되어 있다.

[내용]

성리학적인 경전에 관한 연구를 비롯하여 현실 문제 해결에 대한 방략까지 제시한 이이의 사상이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다. 우선 부(賦)·시(詩)는 철학적인 감회를 적은 것이 많다. 「이일분수부(理一分殊賦)」는 이일분수라는 표현을 빌려 천도(天道)와 인사(人事)를 설명한 것이며, 「풍악증소암노승(楓嶽贈小庵老僧)」은 금강산에 놀러갔다가 중을 만나 문답한 것으로, 유교와 불교 사상을 비교하여 지은 것이다.

소(疏)·차(箚)는 주로 당시의 시대적·정치적 폐단과 그 시정을 요청하는 상소문이 대부분이다. 계(啓)도 대부분 민폐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편지에는 성리학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와 예(禮)에 대한 내용을 서신으로 주고받은 것이 많다. 특히 성혼(成渾)과의 사이에서 오고간 서신들은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이나 인심도심(人心道心)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밝히고 있어, 이이의 성리학적인 입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잡저(雜著)에는 그의 교육에 대한 열성과 사회개혁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많은 저술들이 수록되어 있다. 「동호문답(東湖問答)」은 경세제민과 사회개혁을 위해 왕도(王道)와 신도(臣道)를 세우고 이를 위해 언로 확대, 폐정개혁, 과거제의 개혁 등을 주장하기 위해 저술한 것이다. 「학교모범」은 입지(立志)·검신(檢身)·독서 등 16개조에 달하는 학교의 모범이 되는 규범을 정한 것이다. 「서원향약(西原鄕約)」·「해주향약(海州鄕約)」은 당시 향촌사회를 성리학적 도덕이념에 따라 교화 운영하기 위해 설립한 향약에 관해 저술한 것이다.

「성학집요(聖學輯要)」는 임금의 학문과 정치를 돕기 위해 수기치인(修己治人)에 의거하여 사서오경 및 성현의 말을 인용한 주석을 붙여 엮은 것이다. 「격몽요결」은 초학자를 위하여 독서궁리(讀書窮理)·입신칙궁(立身飭躬) 등 학자로서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해설한 글이다. 「경연일기(經筵日記)」는 경연에서 강의한 경서에 관해 논의된 모든 기사를 기록한 것이다.

습유에는 부·시·서·잡저 등이 보충 수록되었는데, 특히 습유 권사의 「논사칠설(論四七說)」은 기대승(奇大升)이황(李滉)의 사단칠정설을 간단하게 평한 글로서, 이이의 성리학적 입장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이황과 함께 조선 성리학의 쌍벽을 이루고 기호학파의 연원을 연 이이의 정치·철학·역사·사상을 집대성한 책이다. 그는 정통 성리학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불교와 노장사상을 위시한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학설과 양명학 등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를 갖고 있었다.

그는 학문을 실제적인 실천을 강조하는 생활윤리적인 차원에서 바라봄으로써 일상적인 영역으로까지 실천하고자 한 결과, 성리학적인 철학체계에 견고한 현실적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 책은 이이의 학문·사상과 조선시대 성리학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이며, 16세기 사회상을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주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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