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의 효자.
[활동사항]
부모가 병이 났을 때 병의 차도를 알아보기 위해 변을 맛보아 가며 간호하였고,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입에 흘려 넣는 등 효행이 뛰어났다. 82세까지 살았으며 그의 아들 최방빈(崔邦彬) 또한 효행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1841년(헌종 7)에 음사(蔭仕)로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하였다.
[상훈과 추모]
조정에서 최점록의 효행을 듣고 정려를 내렸다. 한림(翰林) 조휘림(趙徽林)이 사행(使行)으로 강릉에 왔다가 최점록의 효행을 가상히 여겨 반학재(伴鶴齋)라는 호를 지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