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36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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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蹴球-江陵 |
영어의미역 | Gangneung, Home of Soccer |
분야 | 문화·교육/체육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집필자 | 김남일 |
[정의]
축구의 도시로서 강릉이 지니는 축구열기와 지역성.
월드컵 이후 전 국민적으로 축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크게 높아졌다. 100년 전 초당학교의 체육수업으로 시작한 강릉 축구는 다른 지역에 비해 더욱 큰 관심과 사랑과 받으며 열기를 띠고 있다. 강릉 지역의 축구사랑은 지역정체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개설]
-축구를 좋아하세요? - 강릉의 축구 사랑
2002년 월드컵 이후 한국인의 축구 사랑은 더 한층 구체적이면서도 열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도 시차와 국경을 넘어선 한국인의 응원 열기는 국제적인 화제가 되기도 했을 정도다. 축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나라의 정체성으로 표현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사실 이런 열기가 겉으로 표출되기 이전에도 축구는 우리나라 수많은 체육행사의 기본이자 꽃이었다. 동네 좁은 골목에서 허술한 공을 차면서 뛰어 놀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한국의 성인 남성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추억이다. 스포츠의 한 종목이라기보다는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문화가 되었으며 이미 우리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축구.
강릉 지역의 축구에 대한 열기와 열정은 전국 어느 지역 못지않다. 그리고 강릉이라는 도시가 축구에서 받은 영향도 매우 크다. 이런 것들은 사실 전국 그 어느 지역보다도 대단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강릉의 단양절(端陽節)[단오절] 축구대회와 월드컵대회 응원 열기, 지역 고등학교의 농상전[강릉농공고-강릉제일고] 축구대회는 축구의 도시 강릉을 표현하기에 충분하다. 이런 행사가 있을 때면 온 도시의 관심과 화제가 축구로 집중된다. 뿐만 아니라 마을 단위 조기축구모임부터 강릉시 대표 축구단에 이르기 까지 강릉 축구인의 활동과 일반시민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도 남다르다.
강릉에 축구가 발원된 시점은 1906년 초당영어학교가 개교되면서부터다. 초당영어학교의 개교와 더불어 사립 근대학교 간 연합체육대회가 열렸으며 거기에서 축구는 중대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학교교육을 통해 도입된 축구는 점차 지역으로 저변을 확대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후 1920년대 강릉단오제와 접목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축구는 강릉 지역 및 마을 공동체의 보편적 놀이로, 본격적인 지역생활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특히 지역의 축구대회인 관동단양제축구대회[1925]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상황에서도 전국적으로 50여 팀이 참가하여 한 달여 간 진행되었다. 당시 축구스타는 많은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특히 요정이나 술집 등의 기생들이 축구대회를 구경하고 응원하는 모습은 세인의 눈길을 끌었다. 마을의 촌로에서부터 어린 학생, 기생에 이르기까지 축구 경기를 관전하러 모일 만큼 축구에 대한 지역의 관심과 열기는 매우 높았다. 그러나 1942년 일제는 강릉단오제 및 모든 구기대회를 폐지했고, 이로 인해 단양제축구대회도 함께 중단되었다.
이후 강릉단오제가 부활하면서 다시 강릉에서의 축구대회가 한동안 이어졌다. 해방 후 강릉의 축구대회로는 단양절축구대회의 부활인 관동축구대회가 명맥을 이어가게 된다. 우익청년단[건국청년]과 좌익청년단[민주청년]의 경기인 관동축구대회의 경기가 진행 중일 때에는 시내를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지역민들의 관심은 매우 컸다. 자동차 불빛으로 밤을 밝히며 경기를 진행할 정도였다는 에피소드는 당시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단양제축구대회와 관동축구대회 등에서 축구가 본격화되었지만, 학교 축구는 강릉 지역의 축구가 비롯된 곳이며 동시에 지역 축구의 미래를 책임지는 곳이기도 하다. 학교 축구가 제대로 활성화되어야 축구의 위상이 높아질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강릉 지역의 학교 축구부로는 강릉 축구의 양대 축을 형성해 온 강릉농업학교[1928년 개교]와 강릉상업고등학교[1938년 개교] 등이 가장 유명하며, 이 밖에 초중고의 여러 학교와 각 대학 축구부 등이 강릉의 축구를 이끌고 있다.
초등학교 축구부로는 강릉초등학교, 성덕초등학교, 옥천초등학교 등이 그 기원을 이루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성덕초등학교와 주문진초등학교가 활동 중이다. 중학교 축구부는 강릉중학교, 주문진중학교, 경포여자중학교가 축구의 보급과 발전에 기여해 오고 있다.
고등학교 축구부는 강릉농고와 강릉상고, 주문진수산고등학교가 시작을 이룬다. 이후 강일여자고등학교 축구부가 탄생하여 우리나라 여자축구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각 학교에 축구부가 생기고 자리를 잡으면서 강릉단오제에서도 자연스레 축구팀끼리의 격돌이 시작되었다. 특히 강릉농고와 강릉상고의 축구는 학교 축구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축구는 누구에게는 일, 누구에게는 드라마, 누구에게는…”이라는 광고도 있지만 강릉 사람들에게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스포츠라면 보고 즐기면서 환호하면 끝난다. 하지만 강릉 사람들에게 축구는 스스로 선수가 되어 열심히 참가하는 경기다. 축구가 가히 국민스포츠로서의 면모를 단단히 과시하는 곳이 강릉이다.
현재 강릉 지역에 등록되어 있는 축구 단체만 해도 초, 중, 고, 대학교 및 시청팀을 포함하여 모두 11개 팀에 달한다. 그 밖에도 선수 수준의 축구인으로 국민생활체육 한마음 리그에 등록된 선수만도 23개 팀 1371명이다. 또한 다른 지역의 일반 축구동호회 수준의 순수 아마추어 팀은 1996년 통계로도 5600여 명이었으니, 강릉 지역의 축구 사랑과 지역 정서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월드컵 이후 전국민적인 축구 열기에 힘입어 현재는 더욱 많은 축구동호인이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축구 열기가 한 번에 한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계기는 역시 축구대회다. 강릉은 한국 전체에서 도시 규모로 볼 때 큰 축에 속하지는 않지만 큰 규모의 축구대회는 매년 세 종류나 열린다. 그리고 그 대회가 있을 때마다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들썩이는’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도 크다.
가장 유명하면서도 열기가 뜨거운 축구대회는 강릉단오제축구대회[강릉농공고-강릉제일고]다. 단오제 기간에 열리는 이 대회 동안에는 축구장 관람석을 가득 메운 응원단과 시민들의 축구 사랑이 온 도시를 들썩이게 한다.[단오날의 농상전 사진 및 멀티화면, 관련자 인터뷰]
강릉 지역 주민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문화축제 속의 축구축제를 즐겨왔다. 열기와 호응도로는 월드컵이 부럽지 않을 정도의 축제다. 더구나 월드컵이 정치색과 상업주의, 인종차별 등의 어두운 그늘을 감추고 있음에 비해, 강릉의 축구축제는 민간단체 주관으로 열리는 순수한 축구대회다.
강릉단오제축구대회는 월드컵보다 10년 이상 앞서서 시작되었다. 근대식 학교를 통하여 강릉에 전파된 축구는 농한기에 신체를 단련할 수 있는 수단이자 유희도구로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급속하게 인기를 얻으며 번져나갔다. 처음엔 소단위 부락 중심의 골목 축구가 다였으나, 점차 길[신작로] 축구, 논두렁 축구로 발전해서 대단위의 지역대항 축구시합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근대에 발생한 강릉의 이런 축구 열기는 강릉 지역의 전통문화축제인 단양제의 일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접목되었다. 1920년대 초 단양제 축구대회는 강릉을 비롯한 사천, 연곡, 주문진 등지의 지역대항 시합이었으나 1925년에는 멀리 대관령을 넘어 평창, 춘천 등지는 물론 함흥, 고성, 장전, 양양, 울진, 포항에 이르는 50여 개 팀이 전국적으로 참가하기도 하였다. 응원단 역시 해로를 이용, 주문진을 통해 몰려들었다고 전한다. 경기는 당시 강릉수비대[현 강릉여중 자리] 연병장에서 주로 열렸는데, 축구를 통해 나라 잃은 한을 달래는 축제로 승화되어 한 달여 간 열기가 이어졌다 한다. 일제 말기에 구기 폐지와 단오제 금지조치로 인하여 단양제축구대회는 잠시 중단되었다가 해방 후 다시 부활되었고, 한국전쟁 이후 일시적으로 침체를 보이다 단오제 행사와 더불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단오제축구대회는 점차 확대되어 일반부와, 초, 중, 고등부 축구시합으로 개최되었는데 주로 강릉농고, 강릉상고, 주문진수고의 3파전으로 진행되었다. 이런 경기들은 분위기 과열로 인해 세 차례나 중단된 일도 있었다. 현재는 강릉농공고[전 강릉농고]와 강릉제일고[전 강릉상고]의 정기전으로 치러지고 있다.
축구의 고장 강릉에서 열리는 전국적인 큰 규모의 축구대회가 바로 금강대기 축구대회다. 이 대회는 매년 전국에서 온 80여개 이상의 중고등학교 축구팀이 참가하여 기량을 겨룬다. 지역의 축구 열기가 한데 집중되는 이 대회는 지역사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축구관심과 기량을 겨뤄보는 금강대기 축구대회의 승패와 결과에 대해서 시민들의 관심도 크고, 또 부수적으로 대회 자체가 지역 경제에도 적지 않게 기여하고 있다.[관련자 인터뷰 포함]
매년 5월경 개최되는 이 축구대회는 강원도민일보사와 대한축구협회의 주최로 열리며 강원도축구협회가 행사를 주관한다.
특히 금강대기 축구 대회는 참가 규모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참가인원의 규모도 선수 및 임원을 포함하여 5,000여 명에 달하며, 학부모 응원단을 포함하면 6,000여명의 대회 관계자가 강릉에 모인다.[2004년 현황]
한편 여자축구대회인 청학기 축구대회는 강릉의 강일여고를 비롯한 초, 중, 고, 대학의 여자 축구부가 참여하여 기량을 겨루는 자리다. 1992년 처음 열린 청학기 축구대회는 그동안 축구의 금기지대로 인식되어왔던 여자축구 분야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명실 공히 전국적 규모의 대회를 만들어 여성 스포츠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또한 단순한 축구대회가 아니라 지역민 모두가 참여하고 즐기는 생활 속 축구축제로 자리매김하는 데에도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다.
이런 축구가 강릉 지역에 가져다주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측면에서 다양하다. 강릉의 축구가 정치 행정적 측면에서 지역에 미치는 효과를 우선 살펴보자. 축구는 지역 주민들에게 참여민주주의를 형성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주고, 나아가 지역의 경영 및 행정 역량을 향상시키는 데에 기여하면서, 결과적으로 지방분권화에 기여하여 지방자치제의 확립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축구를 통해 지역 주민 스스로 축구를 행하고, 축구 행사를 위한 자원봉사 등 지역의 행사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하여 시민들이 자신의 역할을 가지게 되어 참여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 또한 지역 경영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축구 관련 행사는 지역 경제 등을 홍보할 수 있는 장으로 활용되며, 지방자치단체 간 정치적 교류의 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즉 축구가 지방 경영 능력과 지방정부의 행정적 역량을 향상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효과들은 결과적으로는 지방분권화, 지방자치제의 활성화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강릉 지역에서 열리는 축구대회의 경제적 이득으로는, 축구대회 덕분에 숙박업소 및 식당가가 성황을 이루어 지역의 소득을 증대하는 데에 에 큰 기여를 했고 그 결과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강릉 지역의 축구대회 등 다양한 축구 관련 행사는 관광과 각종 이벤트를 겸한 지역 경기 부양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오징어 등의 다양한 지역 특산물의 판매, 주변관광지와 숙박업소 및 요식업소의 매출 향상 등으로 대회 방문객 1인당 1일 10만원 정도의 소비지출을 한 것으로 지역 언론도 파악하고 있다.
2004년도 금강대기 축구대회를 예로 들어보자. 금강대기 축구대회가 지역경제 파급한 효과는 행사 기간 동안 지역방문객들을 상대로 한 직접적 지출액과 행사비용 등을 파악하여 추정할 수 있다. 2004년 금강대기 축구대회에 참석한 선수 및 외부 방문객 등 행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참가인원 규모는 전체 6,000여 명에서 1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행사 기간 9일 동안 머물면서 소비한 지출액은 1인당 1일 5만원에서 10만원 정도라고 추산할 때, 지역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자못 크다 할 수 있다.
비슷한 시기 강릉에서 있었던 2004 강릉국제관광민속제의 경우 방문객 1인당 하루 평균 지출비용이 56,457원임을 감안하여[세계무술축제의 경우 1인당 평균 83, 121원씩 지출], 이를 적용해서 금강대기 축구대회와 관련된 외지 방문객들이 유발한 직접적인 경제효과로 지출비용을 추정해본다면, 이들의 하루 지출비용은 5억 6천만 원 정도에 이른다. 전체 9일간을 계산해보면 총 50억 원 이상의 소득창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물론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과 스포츠대회에 참가한 사람들 간의 지출의도와 비용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지출하는 숙박비, 교통비, 식비 등에는 별 차이가 없을 것으로 판단되며, 이런 기본 지출과 기타 비용을 고려한다면 지역축제를 방문한 외지 방문객들의 지출비용을 활용해서 추산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 밖에, 이런 행사들 덕분에 지역의 여러 시설 및 고용 부문에도 많은 긍정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행사기간 동안의 편의를 위해 사전에 도시 전 구역에 대한 조경공사, 도로정비, 도시미관 정비 등등의 지역시설과 관련한 개발의 행위가 이루어졌다. 개발과 관련된 이런 경제적 효과와 고용 증대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긍정적인 영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각종 축구대회를 유치하고 거기에 참여함으로써, 축구 도시로서의 강릉의 면모를 과시한다는 지역 주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유서 깊은 축구 도시로서의 자부심과 자존심은 그 위상에 걸맞는 전국적인 축구행사를 개최한다는 만족감으로 이어진다. 이런 정서적인 만족감과 자긍심은 축구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더욱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나아가 프로구단 창단의 목소리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축구를 통해 지역공동체의 활력과 생명력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축구를 중심으로 지역공동체의 사회적 화합을 이루어진다. 지역행사를 지역 주민들이 지원하고 또 거기에 직접 참여하면서 공동체의 화합하는 것이다.
강릉 지역민들에게 있어서 축구는 생활 자체다.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직접 즐기고 실천하며 응원하는 스포츠다. 축구로 인한 각종 다양한 지역적 효과를 누리는 것도 지역민의 몫이다. 이미 축구는 강릉의 지역정체성의 하나로 작용하는 것이다.
축구 도시 강릉의 열기는 월드컵 출전 선수들을 비롯한 수많은 축구스타들을 길러내기도 했으며 앞으로도 수많은 축구인들을 배출해낼 것이다. 강릉 시민들의 축구에 대한 사랑은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내 고장 사랑으로 이어지고, 지역화합으로 이어진다. 지역 발전과 지역 주민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에 중요한 활력소이며 자산인 축구는, 강릉의 자랑이다.
금강대기 축구대회의 다양한 지역사회·문화적 활동
-금강대기는 문화공연장의 역할: 개막공연, 강원랜드의 음악CD를 참가 선수단에게 제공행사, 학생들의 응원전 열기 및 기량전 활발
-응원단의 응원 및 소품의 다양하고 화려함, 기량 등
-주민참여의 장: 자원봉사로 성공대회 다짐
-10개 구장에 10개 봉사회가 상시 상주하여 각종 편의 제공
-기타 보건소, 병원 등 8개, 소방서, 파출소, 등이 상시 대기하여 편의 및 안전 제공
-응원단 등 다양한 전국적 참여, 지역 홍보의 장 역할
-문화경연장: 인터넷 방송팀의 사투리 축구해설.
-후원회 등 사회화합적 의미와 기능: 모교사랑의 교직원, 동문 등
-문화이벤트 경연장: 축하이벤트와 함께 지역축제와 연계하여 상승효과 추구함: 연예인 등의 축하쇼
-주변지역 단체장, 기관장 등의 방문으로 지역교류의 장, 지역정치적 도구 역할
-시민성숙의 장: 관전매너 향상 등 교육의 효과 가져옴
-공동체 의식, 사회적 안정 및 화합에 기여: 강릉 농고 7000여 관중이 응원으로 모교사랑 과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