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7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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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承礪 |
영어음역 | Gim Seungryeo |
이칭/별칭 | 석계(石溪),충렬(忠烈)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병우 |
몰년 | 159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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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대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본관 | 김해(金海) |
[정의]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김해 김씨 효절공(孝節公) 김극일(金克一)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진사 김응봉이고, 아들로 김여박을 두었다.
[활동 사항]
김승려(金承礪)[?~1592]는 지금의 김천시 대덕면 대리에서 태어났다. 지용(智勇)을 겸비하고 병법에 출중한 것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 일에서 잘 나타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김응봉과 함께 거병을 도모하였고, 아들 김여박도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들은 나라에 대한 충성심으로 군사를 일으켜 창의(倡義)하였는데, 읍민 수백 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들 의병과 관군이 합세하여 의기는 충천하였으나, 왜군을 막아내기에는 중과부적이었다. 급기야 성이 함락되고 세 사람은 포로가 되어 적들에게 항복을 강요당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설사 머리를 베일지언정 적에게 항복하였다는 말은 듣지 않겠다’는 결의로 오히려 적들을 꾸짖었다. 왜군들은 이들의 기개를 꺾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세 사람을 모두 참하였다.
[상훈과 추모]
조정에서 김승려에게 충렬(忠烈)이란 시호를 내렸고, 후일 지방의 유림들은 「포창완의문(褒彰完議文)」을 지었다. 사림산에 단(壇)이 만들어져 있으며 충렬공 김승려 장군 삼대순절단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