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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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必源 |
영어음역 | Yu Pilwon |
이칭/별칭 | 원백(源伯),일평(一萍).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기화 |
성격 | 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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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 |
성별 | 남 |
생년 | 1625년 |
몰년 | 1684년 |
본관 | 고흥 |
대표관직 |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
[정의]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원백(源伯), 호는 일평(一萍). 장사랑(將仕郞) 유봉(柳鳳)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유영달(柳永達)이다.
[활동사항]
유필원(柳必源)은 어려서 마을 서당에서 글을 배운 뒤 전라북도 논산 출신의 학자 미촌(美村) 윤선거(尹宣擧)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소학(小學)』과 『효경(孝經)』의 내용을 그대로 실천하여 독실한 효심으로 39세 때인 1663년(효종 4) 부모가 병이 나자 정성을 다해 간병하였다. 이후 아버지가 위독해지자 왼손 무명지를 끊어 입에 피를 넣어 며칠 동안 목숨을 연명케 하였다. 이윽고 상을 당하자 『주자가례(朱子家禮)』대로 상례를 갖추었으며, 6년 동안 정성을 다해 시묘살이를 하였다. 또한 동기간의 우애를 다하고자 부모가 물려 준 재산을 분배할 때도 좋은 땅은 아우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고 자신은 박토(薄土)만으로 만족하였다.
아우 유혜원(柳惠源)의 학문이 출중하자 윤선거의 문하에 입문시키고, 아우들에게 행의(行誼)를 경계하는 시문을 지어 명심하도록 하였다. 항상 근면한 생활 태도로 주경야독하며 경전(經典)을 공부하였는데, 시문(詩文)에도 능하여 선비의 도리를 지켜 냈다. 만년에는 후진을 양성하며 시주(詩酒)로 여생을 즐기다 1684년(숙종 10)에 세상을 떠나니, 향년 60세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일평실기(一萍實記)』가 있다.
[묘소]
묘소는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 고리뫼에 있다.
[상훈과 추모]
1722년(경종 2) 아우인 유혜원과 함께 돈독한 효행으로 정려되고 복호(復戶)[충신·효자·열부 등에게 노역과 전세(田稅) 이외의 잡부금을 면제하던 일]되었다. 1829년 창효사에 배향되었다가 1919년 용강사에 향사되었다. 1890년(고종 27)에는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에 증직되었다. 정려는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 고리뫼에 있다. 사람들이 유필원이 사는 마을을 효평(孝坪)이라 불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