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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1550
한자 龍崗祠
영어음역 Yonggangsa
영어의미역 Yonggangsa Shrine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 환산마을 412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황금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당
양식 맞배지붕
건립시기/일시 1919년연표보기
정면칸수 3칸
측면칸수 1칸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 환산마을 412지도보기
소유자 고흥유씨 문중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에 있는 고흥유씨(高興柳氏)를 기리는 조선시대 사당.

[개설]

고흥유씨(高興柳氏)의 사우로서, 일평(一萍) 유필원(柳必源)[1625~1684], 허재(虛齋) 유혜원(柳惠源)[1632~1695], 삼애(三涯) 유덕휴(柳德庥)[1667~1739], 수한(睡漢) 유세기(柳世箕)[1768~1821] 네 효자를 모시고 있다. 일평과 허제 형제는 효가 지극하고 우개가 극진하였다. 아버지의 변환이 위태로울 때 형 일평  유필원이 손가락을 끊어 입에 주혈을 하였고 여묘(廬墓) 삼년을 하면서도 어머니를 극진히 살폈다. 어먼의 병환에는 아우 허제가 손가락을 끊어 주혈하여 10년의 수(壽)를 늘리고 상을 당해서도 여묘를 하였다.

[위치]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의 환산마을에 있다.

[변천]

1722년(경종 2) 한 가문에서 두명의 효자가 나와 정려되어 복호(復戶)가 내려지고, 1768년에 창효사(彰孝祠)에 배향되었다. 1868년 별묘(別廟)를 세워 향사(享祀)했고, 조령(朝令)으로 정향(停享)함이 부당하다는 사론이 일어 1829년에 다시 배향했다가 1868년 대원군에 의해 훼철되고 1919년 새로 사우(祠宇)를 창건하여 용강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 뒤 1922년에 조카 삼애를 배향하고 1952년 허재 유혜원(柳惠源)의 5세손 수한 유세기(柳世箕)를 추배했다.

[형태]

용강사(龍崗祠)는 대문간, 강당, 사당 세 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을 쌓아올려 뒤쪽으로 갈수록 높아진다. 대문은 솟을삼문으로 맞배지붕이다. ‘앙지문(仰止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이며, ‘경효당(敬孝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둥글게 다듬은 주초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방풍판이 있다. 둥글게 다듬은 주초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다. 용강사고흥유씨 8대조 및 일평(一萍)  유필원과 허재(虛齋) 유혜원의 위패가 있다. 경효당 오른쪽에 정려각(旌閭閣)이 있고, 대문 오른쪽에 효자비(孝子碑)가 3기 있다.

[현황]

제관은 용강사 제관주가 겸하는데, 각 면의 향교 유림으로 정한다. 제일 전에 3일 동안 목욕재계하고 술을 마시지 않으며, 부정한 것을 보지 않고 접근하지도 않는다. 음력 10월 15일 오전 8시~10시에 술과 쌀, 떡, 소고기, 과실 등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낸다. 시제에 사용되는 제수는 모두 날것을 사용한다. 유림들이 와서 도포를 입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향교와 마찬가지이다. 제사 후 다 함께 음복을 한 후 해산한다.

외화리 환산마을의 용강사에서는 음력 10월 보름에 고흥유씨(高興柳氏) 문중의 시제를 지낸다. 환산마을, 무림마을, 가평마을에는 고흥유씨들이 많이 사는데, 사당 오른쪽에 있는 집에서 고흥유씨 종손이 살면서 사당을 관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의 마을제당』 5 전라북도 편(국립민속박물관, 2001)
  • 『고창군지』 (고창군지편찬위원회, 2009)
  • 인터뷰(외화리 환산마을 주민 유종필, 남, 81세, 2009. 12. 6)
  • 인터뷰(외화리 환산마을 주민 이동필, 남, 2010.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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