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유혜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734
한자 柳惠源
영어음역 Yu Hyewon
이칭/별칭 원중(源仲),허재(虛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 고리뫼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기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학자
출신지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 고리뫼
성별
생년 1632년연표보기
몰년 1695년연표보기
본관 고흥
대표관직 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

[정의]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가계]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원중(源仲), 호는 허재(虛齋). 세종 때 왕자 사부를 지냈던 경암(敬庵) 유구산(柳龜山)의 후손이다. 친아버지는 유영달(柳永達)이고, 양아버지는 유영휘(柳永輝)이다.

[활동사항]

유혜원(柳惠源)은 어려서는 형 유필원(柳必源)에게 글을 배웠고, 커서는 고부 선비 권극중(權克仲)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28세 때인 1659년(효종 10) 형 유필원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논산 출신 학자 미촌(美村) 윤선거(尹宣擧) 문하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학문을 수학하였다. 31세 때인 1663년(현종 4) 아버지의 상을 당해 형과 함께 여막을 치고 3년간 시묘(侍墓)를 살았다. 55세 때인 1686년(숙종 12) 어머니가 병으로 위독하자 무명지를 깨물어 입에 피를 넣어 주었는데, 이 때문인지 그로부터 10년간 더 살아서 90세까지 장수하였다.

몇 차례 과거에 응시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고향집에 머물면서 부모에게 성심으로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며, 학문 연구와 후진 교육에 전력하였다. 형과 함께 효도하고 우애하며 향풍을 배양하고, 선비다운 본분을 지키면서 유학의 근본이념을 몸소 실천한 본보기로서 지금까지도 그의 학문과 행적을 우러르는 후학들의 연맥(緣脈)이 이어 오고 있다. 1695년(숙종 21) 향년 63세로 고향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고여흥(高汝興), 고재겸, 고한선, 고한덕 등의 문하생을 배출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허재집(虛齋集)』 3권 1책이 있는데, 진사 백시명(白時明)이 행장을 지었고 전주부윤 김세익(金世翊)이 서문을 썼다.

[묘소]

묘소는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 고리뫼에 있다.

[상훈과 추모]

1772년(경종 2) 형 유필원과 함께 조카 유삼애(柳三涯)의 효행이 더해져 일문 삼효(一門三孝)로 정려되고 복호(復戶)[충신·효자·열부 등에게 노역과 전세(田稅) 이외의 잡부금을 면제하던 일]되었다. 처음에는 창효사(彰孝祠)에 배향되었다가 용강사(龍岡祠)에 배향되었다. 1890년(고종 27) 호조참판겸의금부사에 증직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