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04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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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公州藥令市 |
영어음역 | Gongju Yaknyeongsi |
영어의미역 | Gongju Medicine Fair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진호 |
[정의]
1730년경부터 약 160년간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개설된 약령시.
[개설]
약령시는 원래 감영 소재지로 모이는 약재 중에서 국가가 구입한 뒤 일반인에게 판매를 하는 장터로서 처음에는 각종 약재의 채집과 집산 등의 사정으로 월령(月令)에 따라 몇 차례 개설하였으나 점차 봄과 가을 두 차례 개시로 정착되었다. 한 달 동안 열리는 장터에는 전국 각지의 약초 재배자와 심마니, 상인과 한의사 등이 모여들어 성시를 이루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대표적인 3대 장터로 송파장·평양장·강경장을 들지만, 공주장도 금강 뱃길에 있는 거점 시장이었다. 금강의 강경포구와 연결하여 금강 중류의 공주장과 상류의 대평장, 신탄진장, 유성장 등은 물산의 집산지로 유명하였다. 강경의 집산 물자는 강배를 이용하여 공주포구를 통하여 충청도 내륙 지역으로 수송되고 내륙의 물산은 반대로 수송되어 유통되었다. 이로 인하여 공주포구는 많은 상선과 상인이 모여 성황을 이루었다.
[건립경위]
공주약령시는 18세기 지역 발전을 위한 노력의 결과였다. 공주약령시를 개설하려고 하자 전라도 전주에서 적극적으로 반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730년경 공주약령시가 개설되었고, 그 여파로 전주약령시가 쇠퇴하여 마침내 폐지되었다.
[변천]
공주약령시는 약 160년간 계속되다가 19세기 말에 이르러 시장의 기강이 문란해지고 개시 일에 시장이 열리지 않는 일 등으로 인하여 점차 쇠락해졌다. 그러하여 갑오경장 이후 약상들이 지켜야 할 준수 사항, 공주·대구·충주·진주의 개시일, 상납과 관련한 규정, 관련 인사 성명 및 기타 거래 규정 등을 담은 약령 장정을 제정하여 약령시의 부흥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1920년경 공주약령시를 다시 개시하였지만 활성화되지 못하였고, 또한 인근 대전시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의도에서 대전에 약령시를 설치하였으나 경부선을 이용하는 대구와의 거리 문제 등으로 활성화되지 못하였다.
[현황]
공주약령시는 음력 2월과 10월 두 차례 개설되어 한 달간 지속되는 대구약령시에 이어 음력 3월과 11월 한 달간 열렸다. 현재 공주약령시는 ‘약령거리’라는 명칭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