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26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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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Farmers Festival Music and Dance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걸재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일원에서 농악에 쓰는 풍물을 민속적으로 일컫는 말..
[개설]
풍장은 남사당놀이 6종목 가운데 첫번째 놀이이자, 오늘날 농악으로 통하는 우리 민족음악의 본디 이름이기도 하다. 중부지방에서는 풍물, 호남에서는 풍장, 영남에서는 매구라 하기도 한다. 이를 농악이라 부르는 것은 일본 사람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풍물은 4가지의 타악기(사물)인 꽹과리·징·북·장구가 기본이 되고 여기에 선율 악기인 날라리와 벅구놀이의 소도구인 소고(벅구)로 이루어진다.공주시 일원은 충청남도에서 가장 활발히 풍장을 쳤으며, 웃다리 풍장의 대표적인 고장이다. 5일장을 돌면서 풍장으로만 생업을 이어간 ‘장터 풍장 사당패’가 1970년대 초반까지 활동하였고, 모든 마을에서 정월 안택풍장(건립풍장)을 즐겼다. 대동 민속신앙인 산신제, 거리제, 장승제, 고목대신제 등이 올려지는 현장에서도 풍장을 쳤다. 물론 두레 공동작업장이나 백중놀이, 칠석 등 두레의 명절에도 모두 풍장을 쳤고, 회갑 등의 잔치에도 성행하였다.
[풍장치는 날]
공주시 일원의 전통 농촌 마을에서 풍장을 치던 날은 마을에 따라 다르며, 시 전역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정월 초사흘 : 초사흘 대동 고사가 있는 마을들의 건립과 기원 풍장(정안면 광정리 외)을 한다.
2. 정월 초이레~정월 열사흘 : 집집마다 찾아다니는 안택풍장, 대동 고사 비용의 건립 풍장(시 전역 모든 마을)을 한다.
3. 정월 대보름 고사 풍장 : 정월 열나흘과 보름 사이에 마을 단위 대동 고사를 지내는 모든 마을에서 고풍장, 길나래비 풍장, 고사풍장, 고사덕담 풍장(대동 고사를 지내는 모든 마을)을 친다.
4. 지날(2월 1일) : 속칭 콩볶아 먹는 날이나 머슴들의 명절이라 하여 마을 단위로 풍장을 치고 즐긴다(유구읍·신풍면·사곡면).
5. 봄두레 먹는 날 : 모내기 시작 전 두레가 한자리에 모여 ‘못날 잡기’, ‘품삯 정하기’, ‘여름두레 운영협의’ 등을 하고 풍장을 치며 하루를 즐긴다(공주시 전역의 모든 두레).
6. 단오 : 전통 명절 단오에는 여인들의 그네뛰기, 청년들의 씨름 등 힘자랑, 천렵 등과 함께 풍장판이 벌어진다(공주시 전역, 특히 반포면 지역에 단오놀이가 매우 성행했음).
7. 두레 논매는 기간 : 음력 5~6월 두레 공동 작업으로 논매는 기간에는 매일 두렁거리 풍장이라는 독특한 풍장을 즐긴다(공주시 전역의 모든 두레).
8. 두레막음하는 날 : 음력 7월 7일 이전 두레 공동 작업을 마무리 하는 날은 한나절 일을 하고 풍장을 치며 즐긴다(공주시 전역의 모든 두레).
9. 여름두레 먹는 날(7월 7일~15일 중 하루) : 모든 두레 구성원과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노는 날로 경천 호미씻기놀이, 선학리 지게 꽃나미, 열두디징이 풍장놀이 등을 행했다. 또한 민속을 잉태시킨 날로 「물풍딩이」, 「눈꿈쩍이 가락」 등 연중 가장 흥겨운 풍장판이 벌어진다(공주시 전역의 모든 두레).
10. 백중날(7월 15일) : 머슴들의 명절이며 젊은이들의 풍장판이 열렸다(시 전역).
11. 추석날 : 추석 날 밤에 풍장판이 벌어진다(이인면·탄천면·의당면·장기면에서 성행).
12. 시루막는 날 (10월 3일) : 계룡면 상하신리 등에서는 마을 대동 산신제가 열리며, 중농 이상의 농가에서는 풍년 감사의 뜻으로 시루떡을 하여 고사를 지내는 날로 일부 마을에서는 풍장을 치고 즐긴다(반포면 전역, 장기면 일부에서 성행).
13. 겨울 5일장(음력 10월~2월까지) : 공주장·유구장·광정장·경천장·수촌장·도계장 등에서 장터를 돌며 풍장을 치는 풍장 사당패의 활동으로 장마다 풍장판이 열린다.
[두레풍장]
1. 두레풍장의 가락
1) 두렁거리(두렁거리 풍장) : 두레 일꾼들이 좁은 논두렁을 걸어가면서 치는데, 가락이 생략되거나 악기별로 가락을 이어가는 독특한 풍장이다. 좁은 논두렁에서 나와 판을 이루는 공터에 이르면 도착 순서대로 제가락을 모두 쳐 마당풍장으로 변한다. 두렁거리 춤장단, 두렁거리 세마치(3채), 두렁거리 칠채 등이 있다.
2) 만물 풍장 : 일감이 쉬운 논매기 작업에서 노래를 하지 않고 풍장을 치면서 작업을 하는 풍장으로, 굿거리 형 13박의 독특한 가락을 연주한다.
3) 늦을마치 풍장 : 풍장가락으로는 독특하게 4박(공주 명 네마치) 풍장이며, 행진할 때에 길나래비 가락으로도 이용된다.
4) 세마치 풍장 : 흔한 3채 가락으로 춤장단 세마치, 잦은 세마치 등이 있다.
5) 오방진 세마치 : 두레싸움 직전 서로 어르는 풍장으로 가락이 생략되고 세게 쳐 풍장 소리가 웅장하다.
6) 물풍딩이 : 칠채의 앞머리 가락을 떼어 놓은 듯하며 빠른 4채의 풍장으로 여름두레 먹는 날 흥겹게 치는 대표 가락이다.
7) 칠채 : 일곱마치 우다리 풍장의 대표적인 가락으로 의당면 수촌리와 율정리에서 성행하였다.
8) 칠채 몰이 : 칠채가락이 변하여 2채형태를 띄는 가락으로 칠채를 치다가 잦은 마치로 넘어갈 때 쓴다.
9) 눈꿈쩍이 : 굿거리는 빨리 치는 것과 같은 가락으로, 상쇠가 머리박만 칠 때 가락이 흥겨운데 하도 빨라 판에서 춤을 추지 못하고 눈만 껌벅인다 하여 눈꿈쩍이 가락이라 칭한다. 의당면과 계룡면에서 성행하였다.
10) 발작 풍장 : 두레꾼들이 두레 싸움이나 풍장 판을 옮길 때 발을 맞추어 이동하도록 치는 풍장으로 쿵 딱만 반복한다.
11) 춤장단 : 덩더깨비라 불리는 2채와 굿거리를 흥겹게 치거나 세마치를 흥겹게 친다
12) 질나래비 : 굿거리를 늦게 치거나 늦을마치를 친다.
13) 다드래기 : 두레 공동체가 농기 고사를 지낼 때 고사 축원을 하면서 반주로 치는 충장으로 3채와 굿거리를 낮게 치며 가락을 다스려 친다하여 다드래기라 한다.
14) 상사풍장 : 두레 공동작업으로 논을 매면서 논매는 소리를 부를 때에 풍장으로 반주하는 풍장가락을 이른다. 이인면 탄천 지역의 일부 마을에서만 시행하였다.
2. 두레풍장으로 파생된 민속
1) 열두디징이 풍장놀이 : 계룡면 중장리·하대리의 열두 두레가 한데 어울려 판을 이뤄 풍장을 치고 실력을 겨룬 풍장판으로, 전통사회 풍장판으로는 공주시가 가장 컸다.
2) 풍장 싸움 : 두레 싸움 앞부분에 양 두레가 풍장의 실력을 겨루는 민속으로 「쇠꺾기」라 하여 상쇠잽이가 풍장가락을 고의적으로 자주 바꾸고 따라 치지 못하면 진다.
3) 공암서원 연합 풍장 : 반포면 공암 일원의 7개 두레가 한자리에서 풍장을 치며 실력을 겨루던 풍장판을 지칭한다. 충현서원의 힘을 빌어 타동 두레를 억지로 출전시켰다 하여 서원 풍장이라 칭한다.
4) 농기 춤 : 반포면 일원에서 힘자랑으로 열린 민속으로 대형의 농기를 혼자 들고 춤을 추는 민속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장사가 있는 마을에서는 이 놀이를 즐겼다.
5) 한천 소 풍장 : 풍장패의 앞에 농우를 꾸며 데리고 다니면서 두레풍장을 치는 것을 말한다. 1970년대 공주 백제문화제 풍장대회에 출연하기도 했다.
3. 두레풍장의 판재
두레풍장의 판재는 13~14종이 있다. 두레패가 이 모든 판재를 소화한 것이 아니라 두래패당 4~5개, 많으면 6~7개의 판을 놀았다. 공주의 두레풍장 중 가장 많이 행해지는 판재는 상모놀이, 꽃나비(무동이)판, 멍석말이 등이었다. 잡색놀음은 장고 놀이가 없는 반면 상쇠놀이와 북춤과 징춤이 성행하였고, 포수는 세우지 않은 반면 양반은 반드시 세워 길나래비의 역할을 겸하게 했다. 공주 지역에 있었던 두레 판재와 놀음은 다음과 같다
1) 길나래비(길굿) : 질나래비, 질굿나비로 불린 판이다. 두레꾼들이 이동하면서 느린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는 마당으로, 판재에서는 풍장판에 농기를 앞세우고 입장하여 자리 잡는 형태이다. 장단은 느린 굿거리와 늦을 마치를 쓴다.
2) 인사굿 : 농기가 좌정하고(자리 잡고) 풍장패가 도열하여 인사를 차리는 판으로, 두레판에서는 허리 굽혀 인사를 차리지 않고 사방에 모음 가락을 울렸다.
3) 앞마당(덕담마당) : 상쇠 또는 축원 덕담 소리꾼이 풍장가락에 맞추어 놀이판의 의미를 되살리고 함께 하는 사람의 복을 비는 축원 덕담을 한다. 긴 축원과 짧은 축원이 있으며, 대부분의 마을에서 즐겼다.
4) 사방고사 : 영기풀이, 고사판으로 불린다. 영기를 앞세우고 농기의 동서남북을 빌며 짧고 강한 풍장을 친다. ‘동방청제대장군……’ 따위의 짧은 축원을 더하기도 하며, 농기고사를 지내는 마을에서 행했다.
5) 무데기 놀이 : 3개 이상의 공동 두레 놀이판에서 시행된 놀이로 풍장패를 동서남북 중앙에 나누어 각각 놀게 하는 판이다. 각각 자신이 있는 풍장을 친다.
6) 풍장겨루기 : 풍장 쌈, 학교 풍장 등으로 불린다. 풍장패를 2개 패로 나누어 가락을 바꾸어 가면서 풍장의 실력을 겨루는 판이다. 두레싸움의 풍장겨루기만이 아니라 규모가 큰 두레풍장은 이 놀이를 여름두레 먹는 날 시행했으며, 짝쇠의 개념도 여기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7) 농기 싸움 : 두레싸움의 마무리 단계로 풍장 판재화 되지 못했으나 계룡 열두디징이 풍장놀이판에서는 농기 춤에 앞서 약속된 2개 두레의 농기를 먼저 쓰러뜨리는 겨루기 형태로 판을 놀았다.
8) 재담판 : 재담으로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 판으로, 판의 최연소자와 좌상의 말장난 판이다. 의당면과 계룡면에서 성행하였다.
9) 소리판 : 민요를 부르며 풍장을 즐기는 판으로, 경조 굿거리장단 민요를 많이 불렀다. 공주시 전역에서 성행하였다.
10) 춤판 : 풍장패와 두레패가 함께 어울리는 춤판으로 두레패 중에서 흥이 좋고 춤을 잘 추는 소수만 함께 한다.
11) 멍석말이 : 풍장판 전형의 멍석말이로 풍장의 실력에 따라 칠채와 오방진가락 잦은마치(2채) 등을 사용한다.
12) 꽃나비마당 : 무딩이(舞童)놀이로 불리며, 장정의 어깨 위에 여장 남자를 세우고 노는 놀이판이다. 삼무동(유구면 신영리)과 오무동이(의당면 수촌리) 외는 단무동이를, 신풍면 선학리에서는 지게 꽃나비를 세웠다.
13) 상모놀이 : 공주 지역의 두레풍장에서는 규모가 작은 마을도 상모를 반드시 세웠다. 상모는 3, 5, 7명의 홀수를 선호하며, 상모놀이는 대부분 잡색놀음이었으나 일부 두레는 열두발 상모를 세워 상모놀이를 판재로 놀았다. 가락의 변형은 많으나 모두 잦은마치(2채)를 썼다.
14) 잡색(땅판) : 잡색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재동(才童)이판 또는 땅판으로 불렸다. 상쇠놀이, 북춤, 상모놀이, 호맹이끌기, 나발, 농기 놀이(농기춤) 등이 행해졌다.
4. 두레풍장의 악기 및 기물 구성과 인원
한 두레의 기본적인 풍물패 구성은 마을에 따라 다르다.
1) 농기 : 1조에 4~5명(농기 기수 1명, 줄꾼 3~4명)으로 구성된다.
2) 영기 : 2조에 흑백 또는 청홍령기(신농사령기가 있는 마을은 1명 추가됨).
3) 길나래비 : 1명, 양반 복색에 살포 또는 지팡이를 잡는다.
4) 쇠잽이 : 2~3명으로 상쇠 1명, 부쇠 1명, 삼쇠 1명 등 대부분 상쇠와 부쇠만 있었으며, 상쇠만 있는 마을은 아주 적었다.
5) 북 : 2~3명, 북춤은 머릿북이 단독으로 행하는 형태이다.
6) 장구 : 2~3명.
7) 징 : 1명, 징놀이 또는 징춤으로 불리는 예능인으로 서열은 쇠잽이 다음이다.
8) 상모 : 3~7명, 짝수 마을이 적고 대부분 홀수로 세우며 열 두발 상모가 포함된다(풍장대회 출연의 목적이 아닌 풍장에서는 7명 이상의 상모꾼은 보이지 않음).
5. 공주의 두레풍장 고지
공주에서 두레풍장이 성행하였던 마을은 다음과 같다.
1) 의당면 수촌리 수촌두레 : 해방 후 공주 풍장의 대표적인 인물 김태산이 활동한 마을이다. 6·25전쟁 후 공주 장터 사당풍장원들의 대부분이 이 마을 두레꾼들로 구성되어 두레풍장 역시 매우 강했다. 우성면 목천리와 매년 수차례 두레싸움을 하여 풍장싸움 가락도 가장 많이 전수되고 있다. 대표적 인물에는 이홍구, 송순갑 등이 있다.
2) 공주시 검상동 검상두레 : 일제강점기(1940년 이전)와 해방 후 공주 장터사당패를 운영한 마을로 공주 읍내권의 풍장을 좌우했다. 풍장패 전원이 이 마을 두레꾼으로 두레풍장이 성행하였다.
3) 계룡면 중장리 마루들두레 : 열두디징이 풍장놀이의 수상쇠 유기봉이 활동한 마을이다. 1970년 이전에는 공주시에서 가장 큰 규모의 두레풍장이 운영되었으며, 가락은 평이하나 판재와 놀이가 발달되었다.
4) 반포면 공암리 서원두레 : 7개 마을의 합동 두레풍장판이 벌어진 마을로 농기 놀이가 유명한 두레이다.
5) 우성면 목천리 목천두레 : 공주에서 들이 넓은 상서들, 목천들, 수촌들의 중심에 있는 마을이다. 두레풍장이 수촌두레보다 세었으나 1950년대 중반에 수촌 사당풍장이 득세하면서 경쟁을 했던 마을로 풍장 가락이 좋고 판재가 컸다.
6) 유구읍 신영리 본동두레 : 유구읍 일원에서 가장 큰 풍물패가 운영되었으며 상모, 열두발 상모, 깨끼춤, 꽃나비 춤 등이 성행하여 매우 흥겨운 풍장을 즐긴 두레이다.
[기원 풍장]
1. 기원 풍장의 가락
1) 발작풍장 : 잔가락을 모두 생략하고 발걸음에 맞추어 쿵 딱만 울리는 풍장이다. 신에게 고사를 올리러 이동하면서 소란할 수 없다 하여 소리도 크게 치지 않는다. 정초 터누르기에서 우물 → 부엌 → 장독 → 마당으로 이동할 때와 동네고사 때에 본 고사를 지내고 소지 올리러 갈 때 친다.
2) 짧은 축원풍장 : 단마치풍장을 말한다. 몰이가락 등으로 불린다. ‘뚜르세 뚜르세 물구녁만 뚜르세’ 하는 식의 짧은 축원소리를 하고 난 후 치는 가락으로 풍장패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실력으로 빨리 몰아치고 강하게 끝낸다.
3) 긴 축원풍장 : 마당에서 성주 축원을 할 때 축원소리의 반주로 치는 풍장이다. 삼채로 시작하여 굿거리를 섞기도 하며 소리가 끝나면 잦은마치로 맺는데, 일명 다드래기 풍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을단위의 대동고사 뒤풀이 마당, 터다지기에서 마당(성주)고사, 안택고사, 농기고사 등의 고사 축원 덕담과 집들이, 집터다지기, 잔치집 등의 축원 덕담에 모두 사용된다.
4) 안택풍장 : 정초 집터누르기 풍장마당에서 치는 모든 가락을 이르는 일반명사이다. 휘몰이, 삼채. 사채, 굿거리 등의 가락으로 구성된다.
5) 대동고사 풍장 : 마을 전체를 위하여 전체 주민이 참여하는 고사의 본마당에서 치는 풍장을 이른다. 특히 농기고사의 경우 고사 전·중·후 3회를 치는데 신에게 올리는 풍장이라 하여 조용히 친다. 이 풍장을 고사풍장이라 하며, 가락은 평이하다. 대동고사는 엄숙함을 중히 여겨 풍장을 치지 않는 마을도 있다.
※주 : 공주 일원의 전통사회에서는 선거리 굿이 적고 앉은굿이 성행하여 굿판에서 치는 풍장은 없었으며, 일부 선거리에도 풍물 악기 일부를 사용하지만 모두를 사용하여 연주하지는 않았다.
2. 기원 풍장의 축원 소리
1) 짧은 축원
마을마다 조금씩 달라 수많은 축원이 전해지지만 가장 일반적으로 흔히 쓰는 축원은 다음과 같다.
(1) 우물 : “뚜루세 뚜루세 물구녁만 뚜루세 칠년대한 가믄날이 물나도록 뚜루세”
(2) 부엌 : “둘왔어 둘왔어 조왕님이 둘왔어 만수복덕 누리라구 조왕님이 오셨네”
(3) 장독 : “오셨네 오셨네 칠성님이 오셨네 자손만대 부귀영화 누리라구 오셨네”
(4) 마당 : “해동하구두 조선국 충청도하구두 공주땅 의당골이 00 씨내 가문 만대 영화 축원이요.”
(5) 대문 앞(주인 부르는 소리) : “우리가 누구냐? 우리가 오라는 디는 웁써두 갈디가 많은 개통새가 아니냐. 이집 지붕새가 지법 두툼하니 00년 새해를 맞이하여 터나한번 걸데 눌러주구 가자. 쥔장을 불러라(이리오너라)”
2) 긴축원
마을마다 조금씩 달라 수많은 축원이 전하며 노래형과 대사형이 전승된다. 2가지 모두 즉흥성이 강하여 앞의 소리는 정해진 노랫말로 하고 뒷부분은 실정에 맞추어 노래한다.
[장터 사당풍장]
1. 기원과 변천
1) 장터 사당풍장의 생성 : 공주장에서 활동한 풍장패들이 어떻게 생성되었으며 어떤 사람들이 활동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일제강점기 이전 조선조부터 활동해 온 것은 확실하지만 1890년 이전의 풍장패에 대한 기록이나 활동자는 없다. 여느 지역과 같이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된 풍장패가 활동해 온 것으로 보인다.
2) 1910년 이전 : 1890년부터 1910년까지는 곰나루에 거주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장터 풍장패가 활동하였다. 공주장과 공주에서 비교적 가까운 경천장을 주 활동 무대로 하였으며,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활동을 중단하였다
3) 1915년부터 1945년까지 : 곰나루 풍장패가 와해된 후 검상동 주민들로 구성된 풍장패가 활동하였다. 공주장·경천장을 주 무대로 수촌장·광정장·도계장·정산장을 찾아다녔으나 교통이 원활하지 못하여 광정장과 정산장은 자주 가지 못했다. 1940년대 징용으로 끌러가는 사람이 많아 쇠퇴하였으며, 1943년부터 일제의 탄압으로 장에 나가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소멸되었다.
4) 1945년부터 1971년까지 : 의당면 수촌리 사당풍장패가 활동하였다. 김태산을 주축으로 수촌장과 공주장을 주무대로 하였으며, 이 외에 전의장·유구장·광정장·경천장을 순회했으며 청주장과 평택 안중장까지 진출하였다. 안중장에서는 평택 풍장과 겨루어 이기기도 했다. 6·25전쟁기에 운영하지 못했던 수촌 풍장패는 1955년 다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60년대 5년 동안 대전과 연기 지역에서 활동하던 송순갑을 불러들여 5년 동안 함께 하였다.
이 기간 동안 제1회 백제문화제 전국풍장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왕성한 활동을 하던 수촌 풍장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인해 위축되기 시작했으며, 1970년에는 수입이 적어 마을건립 비용을 지원받아 시행하다가 1971년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중단하고 해산하였다.
2. 가락과 판재
사당 풍장의 해산은 급속히 이루어졌고, 가락과 판재를 기록하거나 조사가 미약하여 현재는 부분적으로밖에 전하지 못한다. 수촌리 풍장이 치던 가락은 늦을마치(네마치), 세마치(세마치·춤장단세마치·잦은세마치), 춤장단(굿거리), 잦은마치, 질나래비, 멍석말이 가락, 쩍쩍이, 칠채, 잦은 칠채, 칠채몰이, 마당풀이 등이다. 이 가락은 김태산이 마을을 떠난 1980년대에 채록되었다.
1999년 조사된 바로는 규모가 32명 내외로 상쇠·부쇠·삼쇠·사쇠·징 각 1인, 장고 5인, 북 5인, 상모 7인, 질나래비 1인, 잡색 3인(대감·기생·거지), 새납 1인, 농기 1인, 영기 2인, 소리꾼 3~4인 정도였다. 당시의 가락과 판재를 마지막으로 배운 공주농업고등학교 풍물단의 1~3기가 김태산에게 전수를 받아 예능 보유자는 존재하나 재현하지는 못하고 있다.
[현대의 풍장]
1. 백제문화제 전국 풍장대회
1960년 산업사회가 발달하면서 공주의 풍물은 각종 영상물 등에 밀려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새마을운동의 미신타파로 인하여 기원 풍장이 쇠락하고, 영농의 기계화로 인하여 두레풍장패가 모두 와해되었고, 장터 사당풍장도 사라졌다. 이런 현실에서 공주의 풍장판을 다시 살린 것은 백제문화제의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개최한 전국풍장대회였다.
전국풍장대회라는 명칭을 사용했지만 충청남도 내 10여 개의 풍장패와 공주시의 각 면 대표 풍장이 출연한 20여 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로 인하여 풍장은 다시 활기를 띄었다. 그러나 이 또한 5년을 넘기지 못하고 1970년대에는 풍장대회로 전락하여 공주인들만 출연하게 되었고, 근근이 그 명맥을 유지하다가 백제문화제가 격년제가 되면서 사라졌다.
2. 공주농업고등학교 풍장단
풍물이 쇠퇴하던 공주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은 것이 공주농업고등학교(당시)의 풍물단 창단이었다. 1979년 농업고등학교에 풍물단이 구성되어 김태산을 강사로 초빙하여 풍물을 시작했다. 이후 3년 동안은 김태산이 지도하는 공주 장터 사당풍장재로 운영되었다.
하지만 전국규모의 풍장대회 입상을 위한 실력이 고등학교 풍장으로는 하위권이어서 당시 민속촌에서 풍물을 관장하고 있던 정인삼을 초빙하였다. 전라좌도 풍장인 정인삼은 3년 동안 김태산, 송순갑, 이홍구 등의 풍장을 기본으로 충청도 웃다리 풍장 12마당을 재구성하여 지도하였다.
이후 충남의 각종 대회에서 상을 타기 시작하여 전주대사습의 학생부 농악경연대회의 우수상(1982년), 동 대회 장원(1997년) 등을 수상하였고, 1988년 하계 올림픽의 폐막식에 출연하여 성가를 높였다. 동 풍물단은 공주에 풍물인구나 역량을 증폭시켰다. 또한 태봉초등학교 초등 풍장패나 공주북중학교 등의 중학교 풍장단 등 학교 풍장이 성행하였다. 농어민 후계자, 면단위 부녀 풍장단 등의 풍장도 성행하였으며, 이들 단체의 모든 강사는 공주농업고등학교 풍물단 출신이었다.
농업고등학교 풍장단은 풍장 쇠퇴기의 중흥을 가져왔지만 몇 가지 폐단도 만들었다. 첫째, 마을마다 다른 특성을 지닌 풍장을 공주농업고등학교 풍장으로 단일화하여 우수한 마을 풍장을 쇠락시켰다. 둘째, 정인삼이 정리한 판재는 공주에 없던 설장고 놀이의 삽입, 공주 풍장의 꽃인 꽃나비 판재의 생략, 농기·영기·화복 등 고장 전통의 풍물 소품의 도식화, 기본적인 가락 외 숨겨진 가락의 판재화 실패 등의 피해를 끼쳐 공주시 고유 풍장을 일부 훼손하였다.
3. 공주시 풍물단
공주농업고등학교 풍물단은 민속촌 풍물단에 단원으로 다수 진출하였다. 이들은 다시 공주농업고등학교 풍물단 출신들을 중심으로 뭉쳐 공주시 풍물단을 결성하였다. 공주시 풍물단은 공연과 백제문화제 및 전국 풍장대회 출연을 주요 사업으로 1년 1회 이상의 정기 공연을 하였다.
공주농업고등학교 풍장단 1기 최원철·임재섭, 2기 음몽룡·이현우, 3기 이운주·정철기 등이 중심이었던 공주시 풍물단은 1993년 전주대사습 풍물 일반부 최우수상 수상, 1994년 동 대회 장원을 수상하는 등 전국적인 명성을 떨쳤다. 이후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타 분야 공연에 밀려 활동은 미약한 편이다.
[공주 풍장판의 주요 인물]
1. 1970년 이전 인물
1) 김태산 : 공주시 의당면 수촌리 출신의 상쇠면서 판장이다. 광복 이후 공주 장터 사당풍장을 이끌어 1972년까지 운영하였으며, 대전 일원에서 활동하던 송순갑을 불러들여 장터 풍장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전국 풍장대회에서 우승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공주농업고등학교 풍장단의 설립에 공헌하고 초대 선생으로 활동하였다.
2) 이원길 : 공주시 의당면 율정리 출신의 상쇠이다. 장터 사당풍장의 상쇠로 공주 사당풍장이 소멸된 후 서울에서 풍물인으로 활동하다가 귀향하여 의당면 율정리의 풍장을 이끌었다. 상쇠가락으로는 김태산과 견줄 만큼 뛰어났다.
3) 이홍구 : 공주시 의당면 청룡리 출신의 상쇠이다. 장터 사당풍장의 삼쇠로 가락에 능하였으며 판재를 운영하는 능력이 있어 마지막까지 사당풍장인으로 활동하면서 청룡리 풍장을 선도하였다.
4) 최정치 : 공주시 산성동 상쇠로, 장터 사당풍장의 일원일 때는 장구잽이로 활동하였다. 장구를 잘 치고 소리에 능하였으며, 특히 축원 덕담에 능하여 열두달거리 축원, 이사집 고사 축원 등에 능하였다. 사당풍장 쇠퇴 이후 공주 시내 풍장의 패두로 활동하였고, 말년에는 공주시 노인 풍장단을 구성하여 운영하는 등 말년까지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5) 유재천 : 공주시 사곡면 가교리 출신의 장구잽이이며 소리꾼이다. 사곡을 대표하는 풍물인으로 특히 소리에 능하여 곡우천변, 공명가, 만고강산 등의 단가에 능했다. 덕담 민요에 능하여 3일 동안 노래를 불러도 같은 노래를 부르지 않는 사람으로 통했다.
6) 유기봉 : 공주시 계룡면 하대리 출신의 상쇠며 소리꾼이다. 열두디징이 풍장의 12풍장패의 상쇠로 판소리, 일노래, 민요 등에 능하였다. 말년에 목 수술 후 말을 하지 못하면서도 계룡면 풍장판을 이끌었다.
7) 이창린 : 공주시 이인면 신흥리의 상쇠이다. 마을에서는 16세부터 소리꾼으로 활동하였으며 상쇠에 능하여 면내 최고의 상쇠잽이로 통하였다. 특히 풍장과 함께 하는 이사집의 집들이 고사 덕담을 잘 하고 말년까지 왕성히 활동하였다.
8) 고태경 :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의 장구잽이로 1915년생이다. 하대리 풍장의 중심적인 인물로 열두디징이 풍장판에서 개인 놀이를 매년 시행한 인물이었다.
2. 1970년 이후의 인물
1) 권재덕 :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상쇠면서 소리꾼이다. 경천 호미씻기 놀이의 풍장부분과 일노래 부분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소리에 능하여 상여소리, 달궁소리, 덕담, 일노래를 특히 잘 하여 천안시에서 열린 전국체육대회 개막식 식전 공개 행사 때 잡터다지는 소리를 하였다. 예인촌 초대와 2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2) 오익균 : 공주시 의당면 요룡리 출신의 농업고등학교 교사이다. 풍물을 즐겼으며 공주농업고등학교 풍장단의 결성과 지도에 기여하였다. 올림픽 폐막식 풍장의 책임자로 활동하였으며, 매 백제문화제 풍장단 운영과 경연대회 개최를 주도하였다.
3) 최원철 : 공주농업고등학교 풍장단 1기이면서 공주시 풍장단의 초대 회장으로서 농업고등학교 풍장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4) 기타 : 공주농업고등학교 풍물단 출신으로 현재 활동 중인 사람으로는 음몽룡, 이현우, 이운주, 정철기, 임응수, 이용신, 조성천, 김익세, 송성빈, 주병진, 임장묵, 복성수, 이견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