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926 |
---|---|
한자 | 崔溥 |
영어공식명칭 | Choe Bu |
이칭/별칭 | 연연(淵淵),금남(錦南)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바른 |
출생 시기/일시 | 1454년 - 최부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477년 - 최부 진사시 입격 |
활동 시기/일시 | 1482년 - 최부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485년 - 최부 성균관전적 임명, 『동국통감』편찬 |
활동 시기/일시 | 1486년 - 최부 사헌부감찰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86년 - 최부 홍문관부수찬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88년 - 최부 추쇄경차관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89년 - 최부 중국 저장성 임해현 표착 |
활동 시기/일시 | 1492년 - 최부 지평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93년 - 최부 홍문관교리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95년 - 최부 홍문관부응교 임명, 『성종실록』편찬 |
활동 시기/일시 | 1496년 - 최부 홍문관응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98년 - 최부 단천 유배 |
몰년 시기/일시 | 1504년 - 최부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506년 - 최부 도승지 증직 |
출생지 | 성지마을 - 전라남도 나주시 동강면 인동리 |
외가|처가 | 해남현 - 전라남도 해남군 |
유배|이배지 | 단천(端川) - 함경남도 단천군 |
묘소|단소 |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 |
사당|배향지 | 무양서원 -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계동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탐진(耽津) |
대표 관직 | 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 |
[정의]
광주광역시에 있는 무양서원(武陽書院)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가계]
최부(崔溥)[1454~1504]의 본관은 탐진(耽津)이다. 자는 연연(淵淵)이고, 호는 금남(錦南)이다. 할아버지는 최정원(崔井元)이며, 아버지는 진사 최택(崔澤), 어머니는 진용지(陳用之)의 딸 여양진씨(驪陽陳氏)이다. 부인은 참군(參軍) 정귀감(鄭貴瑊)의 딸 해남정씨(海南鄭氏)이며, 1남 3녀를 낳았다. 아들은 최적(崔迪)이다.
[활동 사항]
최부는 1454년(단종 2) 나주(羅州) 곡강면(曲江面) 성지촌(性智村)에서 태어났다. 김종직(金宗直)[1431~1492]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1477년 진사시에 입격하고 1482년 10월 문과에 급제하였다. 1485년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으로 서거정(徐居正)[1420~1488] 등과 함께 『동국통감(東國通鑑)』을 편찬하였다. 1486년 사헌부감찰을 거쳐 홍문관부수찬이 되었으며, 2월 왕명으로 스승 김종직과 함께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교정하였다. 1488년 6월 추쇄경차관(推刷敬差官)이 되어 제주도에 부임하였으나, 다음 해 1월 부친상의 부고를 받고 돌아오던 길에 폭풍을 만나 중국 저장성[浙江省] 임해현(臨海縣)에 표착(漂着)해서 억류되었다가, 6월 14일 한성 청파역(靑坡驛)으로 돌아왔다. 성종(成宗)[재위 1469~1494]의 명으로 중국에서 경험한 일과 중국 문물과 생활 등을 기록한 『표해록(漂海錄)』 3권을 지어 바쳤다.
나주로 돌아와 부친 묘에서 시묘살이를 하던 중, 11월에 모친상을 당해 거상을 마쳤다. 1492년 지평(持平)을 지내고, 서장관(書狀官)으로 중국에 다녀왔다. 이후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부응교(副應敎) 등을 역임하였으며, 1495년(연산군 1) 편수관으로 『성종실록(成宗實錄)』을 편찬하였다. 홍문응교(弘文應敎), 사간(司諫) 등을 역임하였다. 1498년 7월 사화(士禍)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문인이며, 『점필재집(佔畢齋集)』을 가장(家藏)한 죄목으로 단천(端川)으로 유배되었다가, 1504년 10월 24일에 참형(斬刑)을 받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최부의 저술은 왕명으로 저술한 『표해록』과, 외손자 유희춘(柳希春)[1513-1577]이 1571년(선조 4) 최부의 시문을 모아 간행한 『금남집(錦南集)』이 있다. 이후 1676년(숙종 2) 외6대손 나두춘(羅斗春)이 본집과 『표해록』을 합하여 목판으로 간행하였는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또 1724년(경종 4)에 외6대손 나두동(羅斗冬)이 나두춘의 간행본에 연보와 부록을 만들어 『표해록』 뒤에 덧붙여 별도로 간행하였는데, 이 판본이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장서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묘소]
최부의 묘소는 현재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최부는 1506년에 신원이 복직되었고, 도승지(都承旨)에 증직되었다. 후에 예조참판으로 추증되었다. 최부는 광주의 무양서원(武陽書院)에 배향되었다. 무양서원은 최사전(崔思全)[1067~1139]을 주벽(主壁)[사당이나 사원에 모신 여러 위패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위패]으로 최윤덕(崔允德), 최부와 유희춘(柳希春)[1513~1577], 나덕헌(羅德憲)[1573~1640] 등을 배향한 서원이다. 1927년 탐진최씨(耽津崔氏) 문중이 전국 유림의 호응을 얻어 세웠으며, 1984년 2월 29일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호로 지정되었다. 서원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계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