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9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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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重擧 |
영어공식명칭 | Park Joonggeo |
이칭/별칭 | 붕여(鵬汝),병촉재(秉燭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문다성 |
출생 시기/일시 | 1686년 - 박중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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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33년 - 박중거 식년시 입격 |
몰년 시기/일시 | 1742년 - 박중거 사망 |
묘소|단소 | 정광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고룡동 |
성격 | 문인·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순천 |
대표 관직|경력 | 생원 |
[정의]
조선 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문인·학자.
[가계]
박중거(朴重擧)[1686~1742]의 본관은 순천, 자는 붕여(鵬汝), 호는 병촉재(秉燭齋)이다. 할아버지는 증사헌부장령(贈司憲府掌令) 박상현(朴尙玄)이고, 아버지는 자의대부(諮議大夫) 행세자시강원(行世子侍講院) 문숙공(文肅公) 박광일(朴光一)이다. 외할아버지는 고부민(高傅敏)이고, 아내는 김일좌(金日佐)의 딸 부령김씨(扶寧金氏)이다.
[활동 사항]
박중거는 1686년(숙종 12)에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웠고 문예가 뛰어나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여러 차례 향해(鄕解)[또는 鄕試]에 올랐다.1733년(영조 9) 계축(癸丑) 식년시(式年試) 생원(生員) 2등 8위로 입격하였으며, 재주가 많고 학문이 박식하였다.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였던 장암(丈菴) 정호(鄭澔)와 김창협(金昌協)의 문인이었던 도암(陶菴) 이재(李縡)의 문인이 되어 학문을 배웠는데, 박중거가 심오한 뜻까지 꿰뚫어 보는 경지에 이르자 이재가 병촉재(秉燭齋)라는 글자를 써 주었다.
박중거는1736년(영조 12) 전광도(全光道)[전라도의 조선 영조 때 이름]의 생원(生員)으로서 선정신(先正臣)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을 문묘에 종향(從享)하도록 거듭 상소하였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박중거는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뜻에 어긋남이 없이 봉양하였으며, 고향에 거처하면서 후학 양성에 힘쓰다 1742년(영조 18)에 사망하였다.
[묘소]
박중거는 1742년(영조 18) 광주의 정광산(淨光山)[광주광역시 광산구 고룡동]에 장사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