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710 |
---|---|
한자 | 梧峙洞講誼契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인서 |
설립 시기/일시 | 1898년 - 오치동 강의계 결성 |
---|---|
해체 시기/일시 | 1968년 - 오치동 강의계 설립 계원인 김진현의 사망으로 소멸 |
최초 설립지 | 오치동 강의계 - 전라남도 광주군 |
현 소재지 | 오치동 강의계 -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 |
성격 | 친목 모임 |
설립자 | 이동섭|김태구|박기창 |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에 있었던 협동 단체.
[설립 목적]
오치동 강의계(梧峙洞 講誼契)는 스승의 학덕을 추모하고 계원들 상호간의 학문을 연마하면서 자제들을 가르치기 위해 조직한 동학계의 일종이다.
[변천]
오치동 강의계는 조선시대 남강(南岡) 이재정(李載丁)의 문생(門生) 70여 명이 이재정 사후인 1898년에 이동섭(李東燮)의 발의와 김태구(金泰求), 박기창(朴基昌) 등의 주도로 창계하였다.
강의계는 약 70여 년간 지속되다가, 1968년 설립 계원인 김진현(金珍鉉) 계장의 사망으로 소멸되었다.
[내용]
계원의 자격은 학계이기 때문에 한 스승의 문하생만이 될 수 있었으나, 예외적으로 스승의 학문을 흠모하는 후학들도 가입이 허용되어 남강의 제자 72명이 참여하였다.
탈계(脫契)는 계원 사망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계의 성격상 추가 가입이나 승계는 없었다.
오치동 강의계 계회는 1년 2회로 봄[4월 15일]과 가을[9월 25일]에 열렸다. 계회의 주된 내용은 스승의 추모에 관한 사업과 계원들의 학문 연찬을 위한 강회, 자제·제자들의 교육 등이었다.
스승의 추모사업은 스승의 사상을 다각도로 연구하여 심화·발전시키고 유고(遺稿)를 편찬하는 일을 하였다.
계원 스스로 학문을 닦는 강회를 ‘공맹정주소행자(孔孟程朱所行者)’라고 하여 공자·맹자·정호·주자가 행한 바를 읽고 옳은 것을 취하여 바름을 세우려 하였다.
교육적·정신적인 측면이 강조되었기에 계원 간의 상조 기능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강의계는 다른 계와는 달리 새로운 계원이 가입되지 않아 일정 시기에만 존재하는 한시적(限時的) 조직체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